며칠 전에는 내 친구 중 한 명이 자기 딸한테 “엄마는 날로 먹은 줄이나 알아” 하는 소리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그 딸은 명문 대학을 나왔고,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해 교수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교수 중 한 명이 미국 유명 대학으로 옮겨간 뒤 이 유능한 제자(딸)를 불러들여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시켜 주기까지 했다. 여기에 미국서 대학 선배를 만나 결혼했는데, 신랑은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았다.
딸은 남편과 함께 공부를 마치고 서울 요지 오십 몇 평 아파트를 이미 사 놓고 귀국했다고 했다. 이 부러울 거 없는 젊은 부부의 아내가 바로 내 친구의 딸인 것이다.
딸은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2년 정도 키운 뒤 귀국했는데 앞서 했다는 이야기는 “아이를 내가 키웠으니 날로 먹은 줄이나 알라”는 큰소리다.
사위는 한술 더 떴다. 육아 전문 도우미까지 구해 놓고 그래도 못 미더워 유사시 도움을 얻기 위해 장모가 사는 아파트 옆에 집을 마련한 사위는 자기 아내인 내 친구 딸에게 “엄마한테 ‘아이 키워 준다’는 증서를 공증까지 받아오라”고 시켰다는 거 아닌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법률 마인드가 투철한 요즘 젊은이들이라 하더라도 이건 절대 아니다. 왜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기들 주변에는 친정 엄마가 아이 키워 주는 게 다반사였을 것이다. 직접 키워 주지 못하면 돈을 보낸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 잘하는 딸, 예쁜 딸이 성공해야 하니까. 내 딸만은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한국 중년엄마들의 강렬한 소망이 이런 딸들을 만든 것이다.
엄마의 이 가상한 염원이 왜곡되는 것을 보는 게 괴롭다.
경쟁에 너무 길들여져 남에 대한 배려나 체면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가 아예 없어진 젊은이가 너무 많다. 이미 다 커서도 누구누구 부모는 이렇게 해 주고 저렇게 해 주고 끊임없이 비교를 하는 그들. 자식들 경쟁의 끝에 서면 부모의 희생도 경쟁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요즘 부모들은 알까.
소설가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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