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쓰쓰이 야스타카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입력 2007년 6월 30일 03시 00분


여고생 가즈코는 늘 10분 늦는 지각생이다. 10분 부족해서 아침을 거르고, 10분 부족해서 질주한다. 오늘 아침에도 가즈코는 허둥대며 전속력으로 비탈길을 내려가는 중이다. 바로 그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가즈코는 그만 달려드는 기차와 충돌하고 만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찰나, 가즈코는 간절히 바란다. 10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는 늦지 않을 텐데.

좋았던 시간은 추억으로 남고 나빴던 시간은 후회로 남는다. 이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쓰쓰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북스토리)는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리프’ 능력을 얻게 된 여고생 가즈코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축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을 해 볼까. 소설 속 가즈코처럼 미래에서 시험 문제를 보고 돌아와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도 있겠고, 지진이나 화재 등 재해를 예견하고 대피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무조건 해피엔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가즈코가 피하려던 작은 화(禍)가 타인에게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실수일지라도, 말 그대로 시간이 약이 되어 저절로 치유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은 일도 있다. 작가인 쓰쓰이 야스타카의 비전처럼, 서기 2600년의 인간은 정말로 텔레포테이션과 타임리프, 즉 신체 이동과 시간 도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인간은 시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과연 시간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걸까? 시간처럼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도 없다.

쓰쓰이 야스타카는 지능지수 180대의 ‘천재 작가’로 통하는, 일본 공상과학(SF)계의 거장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965년도 작품으로 이후 동명 드라마와 영화로 여섯 번 이상 부활했다. 다시 40여 년이 흐른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1965년의 원작소설이 2600년도의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설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2006년의 동명 애니메이션은 학원 만화와 소프트 SF를 결합한 성장 스토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40여 년 전 작품이건만, 소설도 애니메이션도 21세기의 독자와 관객이 몰입하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현대인은 늘 시간 도둑에게 쫓기며 살아간다. 시간은 늘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인간은 늘 시간을 붙잡거나, 되돌리거나 뛰어넘고자 하는 상상을 한다. SF 소설에서 미래라는 시간적 배경이 중요한 화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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