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원장 조윤명)은 최근 기록물공개심의회 심의를 거쳐 김창룡 저격사건과 관련된 기록을 4일부터 공개하고 국가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서도 일반인에게 서비스한다고 3일 밝혔다.
이 사건은 1956년 발생 이후 저격에 가담한 허태영 대령이 사형 집행되기까지 1년 6개월 동안 본보 등에 매일 보도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던 사건.
지금까지도 범행 동기나 배후 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사건 기록은 30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서울지방검찰청의 형사사건기록 70건, 법원 판결문 7건, 사형집행종료보고 2건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형사사건기록은 육군 특무부대의 의견서, 피의자 신문조서, 증인진술조서 등의 수사기록과 검증조서, 구속영장 등이 포함돼 있어 사건 전모와 수사과정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공개된 수사기록에는 용의자가 검거된 직후부터 배후가 거론됐으나 관련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어 당시 군 내부의 역학 관계 등을 살필 수 있게 됐다.
조윤명 원장은 "기록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관련 전문가들의 몫"이라며 "앞으로 동백림사건, 진보당사건 기록도 공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창룡 저격사건이란=1956년 1월 30일 오전 7시 반 이승만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아오던 김창룡 육군 특무부대장이 출근길에 서울 원효로에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 이 대통령이 직접 빈소에 찾아가 조의를 표하고 조기를 게양토록 했다.
당시 검찰은 사건 발생 24일 만에 특무부대 출신 허태영 대령을 체포했으며 사건의 배후로 제2군사령관 강문봉 중장 등을 지목해 구속했다.
이 사건은 공판만도 54회, 2256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세간의 이목을 모았으며 허 대령 등 3명은 이듬해 사형이 집행됐으나 강 중장은 사형이 언도됐으나 이 대통령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지금까지도 암살사건에 대한 진상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김창룡에 대한 군 내부의 반감이 작용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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