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6>멕시코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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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관람 즐기는 ‘연극의 나라’

남미의 마지막 정류장인 멕시코로 왔다. 멕시코의 공연예술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분야가 없어 난감했다. 도대체 멕시코에서는 뭘 봐야 하지? 그래서 선택한 방법. 아무런 정보 없이 거리로 나가 맘에 드는 공연포스터 순서대로 공연 보기!

멕시코에서는 공연예술이라고 하면 누구나 연극을 떠올린다.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8편의 연극을 봤는데 그중 6편이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을 만큼 사랑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

○ 대부분 사랑 주제… 50대 남자 1인 독백극 관객 울리고 웃기고

첫날 본 ‘디펜디엔도 알 카베르니콜라(Defendiendo Al Cavernicola·원시인의 변론)’는 배우의 매력을 한껏 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어릴 적 즐겨 보던 멕시코 TV드라마 ‘천사들의 합창’ 이래 처음으로 멕시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회색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50대 초반의 남자배우가 2시간 남짓 홀로 이끄는 1인 독백극이었는데,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남녀 역할을 순간순간 바꿔 가며 뿜어내는 열정이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잭 니컬슨과 앤서니 홉킨스를 합쳐 놓은 것만큼 강렬했다. 묵직한 중저음에 쇳소리를 내는 이 남자배우는 5분에 한 번씩 관객을 사정없이 울렸다 웃겼다 수없이 반복했는데, 관객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요리할 줄 아는 배우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록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만큼 배우 한 사람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통역을 위해 함께 간 현지 가이드가 짬짬이 해 준 설명에 따르면 이 연극은 남녀 간의 사랑과 갈등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남자를 대변하는 ‘설을 푸는’ 내용이라고 했다.

멕시코에서 롱런하고 있다는 주요 작품은 하나같이 사랑이나 남녀 갈등, 성 등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제목이 끌려서 본 ‘서른 살 여자들의 고백’이라는 작품은 조만간 2300회를 맞는다고 했다. 로비에 아예 기념패를 걸고 롱런을 자랑했다. 재밌게도 이 공연장은 실내에서도 우산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객석에 콘돔 소나기를 뿌려댔으니까. 처음엔 쑥스러워서 배우가 던져 주는 콘돔을 안 받았더니.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자 객석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고 서 있던 객석 도우미까지 벽을 잡고 웃는 통에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군가 통역해 줬는데 그 배우가 한 말은 “거기 동양 아가씨 어디 문제 있어?”였다나.

○ 초등학생 숙제가 연극 감상문… 학생 단체는 75%까지 할인

다음 날에는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여성의 성기를 주제로 한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러갔다. 한국에서는 서주희 씨가 오랫동안 했던 모노드라마로 많이 알려졌지만 이곳에서는 노련한 여배우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벼운 토크쇼 느낌이 나는 3인극이었다. 한국에서 봤던 공연보다는 진지한 맛은 덜한 대신 친근함을 더했다.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다들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사랑을 나눌 때 그곳이 내는 다양한 ‘목소리’. 멕시코 관객들도 어김없이 이 장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이 장면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 버전, 콧소리가 심한 일본 여성 버전 등이 소개되는데 이곳에선 아이들이 깰까 조심하는 멕시코 주부 버전, 강아지 버전, 거리에서 돈 받고 세레나데를 불러 주는 사람들인 ‘마리아치' 버전, 그리고 성악가의 잠자리 버전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이 연극을 공연할 때 한국에서는 99%가 여성 관객이었는 데 반해 이곳에서는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공연을 보는 연인 관객들이 많았다. 이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에서도 남녀노소가 고루 섞여 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알고 보니 멕시코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통해 연극을 관람하고, 연극 감상문을 숙제로 내는 일이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학생에 대한 할인 혜택도 많고 특히 학생 단체는 75%까지도 할인이 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연극에 친숙해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서 공연 보러 왔다”고 하면 열이면 열 모두 연극을 권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엘리자베스라는 여성은 “어릴 땐 학교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연극을 봤지만 그렇게 보다보니 지금은 연극이 너무 좋다”고 했다.

흔히 ‘축제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멕시코는 크고 작은 축제가 많지만 공연 시장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매년 10월에 열리는 세르반테스 문화축제는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국제 공연축제다. 이 축제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격년으로 좋은 남미 연극의 북미 진출 등용문이 되는 ‘게이트웨이 투 아메리카(Gateway to America)’라는 축제도 있다.

매일 공연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축제 이름에 대해 되뇌곤 했다. ‘미국으로 가는 게이트웨이’. 우리 같으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이렇게 이름 짓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드라마, 음반시장에 두각을 나타내는 ‘한류’가 있다. 언젠가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이런 축제가 생긴다면 어떨까. ‘한국으로 가는 게이트웨이’.

유경숙 공연기획자 pmiki1220@hotmailcom

▼가볼 만한 남미 축제들▼

남미 8개국 여행이 끝났다. 남미에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문화축제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불규칙적인 여행 일정과 여건상 모두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라도 남미 방문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볼 만한 남미의 축제를 소개한다.

▽칠레 산티아고 여름축제

매년 1월 초순경, 산티아고에서 20여일 간 진행되는 인터내셔널 문화축제이다. 칠레의 연극이 주를 이루지만 해외의 유명 작품들을 초청해 선보이기도 한다.

▽쿠바의 음악축제 쿠바디스코

재즈 페스티벌과 함께 매년 5월 하순 하바나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음악축제다. 살사, 맘보, 룸바와 춤 출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

▽파나마 보케테 재즈 페스티벌

주민 1만8000명 정도의 소도시 보케테에서 열리는 재즈 축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열리는 축제다. 재즈 관련 콘서트, 전시, 세미나 등도 함께 열린다.

▽아르헨티나 인터내셔널 탱고 페스티벌

매년 8월경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다. 이 외에도 2∼3월, 9∼12월 집중적으로 크고 작은 탱고대회가 펼쳐진다.

▽콜롬비아 마르살레스 문화축제

남미 12개국이 참가하는 29년 전통의 남미의 대표 문화축제이다. 매년 10월 초순경 마르살레스에서 열리며 연극, 댄스, 음악, 문학, 음식까지 남미의 문화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페루 리마 연극축제

페루를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쉽게 페루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매년 11월 하순경 페루 리마에서 개최되며 남미 8개국이 참여하는 연극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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