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작가 21명 다양한 시각 선봬
현대 사진은 단순히 미학적 기록에서 벗어나 공간을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사진은 일상의 공간을 확장 또는 축소하거나 안팎을 바꾸면서 뜻밖의 이미지를 드러내 보여 준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9월 30일까지 여는 ‘국제현대사진전 플래시 큐브’는 공간과 그것을 이루는 구조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하는 사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미술대학원의 헹크 슬라거 원장이 객원 큐레이터를 맡아 독일 일본 캐나다 한국 등의 작가 21명의 작품 59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현대 사진은 ‘실험 중’이라는 적색등이 깜빡거리는 듯하다. 슬라거 원장은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며 이 같은 사진의 미래는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토마스 데만트(독일) 씨의 ‘착륙’은 실내에 깨진 병이 흐트러져 있는 장면을 담았다. 그런데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모두 종이로 만든 정밀 모형이다. 작가는 촬영 후 모형을 없애 버린다. 사진의 배경은 일시적인 인공 작업이며 예술 또한 덧없다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핀란드의 얀 카일라 씨의 ‘무엇을 언제 어디서’는 일종의 설치 작품. 연감을 바닥에 깐 뒤 벽에는 연감에 게재된 재난이나 참사 현장을 찍은 사진을 붙였다. 미학적 가치의 사진보다 이처럼 사실을 전하는 사진의 이미지가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커 판 더 푸르트(네덜란드) 씨는 독거노인이 외롭게 죽은 암스테르담의 한 공간을 찍어 확대했다. 공간은 사회에 의해 교직되며, 인간의 존재도 공간과 사물의 관계에 의해 설정된다는 점을 알린다.
히로시 스기모토(일본) 씨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사진에 축적하려 한다. ‘극장 연작’은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전(全) 시간을 사진에 기록했다. 이 작품에서 영화의 이미지는 빛의 흐름으로 기록될 뿐이다.
아글라이아 콘라트(오스트리아) 씨의 ‘이미지들의 벽’은 도시가 변하는 순간을 나열한 작품. 베이징(北京) 도쿄(東京) 등 도시의 단면도를 찍어 나무 패널이나 유리판에 붙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한국 작가는 4명이 참가했다. 이 중 윤정미 씨는 ‘뉴욕 공립도서관의 한국’이라는 작품에서 남북의 자료가 섞여 있는 현실을 담담히 비춘다.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남북의 엇갈림이 외국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점을 전한다.
구정아 씨의 ‘당신은 눈이 된다’는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눈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어 확대한 작품.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압구정동에 저런 풍경이 있을까 하는 생경함도 전해진다.
전시에는 ‘어린이를 위한 플래시 큐브’ 코너도 마련되며, 목요일에는 연장 전시(오후 9시까지)와 리움목요음악회도 열린다. 관람료 플래시 큐브 어른 7000원, 초중고교생 4000원. 02-2014-6901
허엽 기자 he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