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연극쟁이 나, 아내 월급으로 먹고살아”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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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밤, 연출가 위성신 씨는 대학로의 술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연극배우들과 어울렸다. “무대 세트 구상 겸 연극에 쓰일 안주 협찬을 위해서”였다. 연극은 제목부터 술 냄새가 풀풀 풍겨나는 ‘술집’이다. 술집에 모인 연극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내내 술집이 배경이다. 공연은 19일∼9월 2일 대학로 인켈아트홀(02-762-0010). ‘술집’을 쓰고 연출한 위 씨는 “술집은 연극쟁이들이 징그럽게 연극 얘기를 하는 곳이자 수없이 많은 연극이 (말로) 만들어지고 엎어지는 곳”이라며 “술집에서 연극쟁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실제 연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술집’ 연출가-배우들의 취중진담

그의 말처럼 ‘술집’의 대사들은 이게 연극인가 싶을 만큼 일상적이고 생생해 일반 관객은 무대 밖 연극인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을 법하다. 연극배우들의 술자리에서 흔히 오가는 무대 실수담과 선배 연극배우들에 대한 ‘뒷담화’도 양념처럼 곁들인다.

# “저 아줌마 꼭 사줘야 해. 대학로 명물이야.”

연극 ‘술집’에서는 대학로의 풍경이 그대도 펼쳐진다. 삼선교에 있는 전집, 묵은지 김치찌개집에 육회집 얘기까지 등장한다. 대사에 나오는 ‘대학로 명물 아줌마’는 10년 넘게 대학로의 술집들을 돌아다니는 키 작은 ‘껌팔이 아줌마’다. “일반 손님한테는 1000원에 껌 한 개 팔지만 연극쟁이들한테는 1000원에 두 개씩도 줘요.”(위 씨)

# “너는 영화 안 해?” “난 이번 공연 때문에 CF 날렸어.”

요즘 웬만큼 인기 있는 배우가 나오는 연극이나 뮤지컬은 더블캐스트, 트리플 캐스트, 심지어 4명이 번갈아하는 쿼드러플 캐스트까지 등장한다. 바쁜 배우들의 영화(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짜내기 위해서다. “당장 잡혀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없어도 앞으로 들어올 것을 대비해 처음부터 더블 캐스트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위 씨의 말. “외국은 거의 원 캐스트인데….”

연극배우들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역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영화 단역을 맡아 잠깐 촬영하고 20만 원 벌었죠. 물론 15분 찍기 위해 3시간을 대기하긴 했지만.” (신인 배우 남보라)

# “요즘 누가 햄릿을 그대로 올리는 걸 보냐.”

‘술집’에서 극중 배우들이 준비하는 공연은 실험극 ‘햄릿’이다. 요즘 대학로에서는 고전 정극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통 ‘햄릿’ 대신 뮤지컬 ‘록 햄릿’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한여름 밤의 꿈’도 원작 그대로가 아닌 우리 식으로 바꾸고 비튼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위 씨는 “고전이나 정극은 제작비도 많이 들고 대학로 현실에서 올리기 쉽지 않다. 고전이나 정극은 흥행에 실패해도 극단이 없어지지 않는 국립극단 같은 국공립단체에서 제대로 해야지 먹고살기 힘든 대학로 극단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연극하면서 살기가 왜 이리 힘드냐.”

‘늙은 부부 이야기’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등으로 이름이 알려진 위 씨는 몇 년 전까지는 대입 연극영화과를 지망하는 수험생에게 연기 지도를 해 돈을 벌었다. “1년에 1억 원 가까이 번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극하느라 진 빚을 갚다 보니 아내에게 가져다 준 것은 100만 원이 가장 큰 액수였다. “아내가 인천시립극단 소속 배우라 월급이 나오니 그걸로 생활했다”는 그는 “뒤늦게 아이가 생기고 보니 요즘은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했다. ‘술집’ 속 연극쟁이처럼 술자리에서 내내 연극 얘기만 하던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지금은 인간 위성신이 연출가 위성신을 먹여 살리는 중이지만 언젠가는 연출가 위성신이 인간 위성신을 먹여 살릴 때가 오겠지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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