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더위가 한창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15일은 삼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初伏)입니다.
복을 맞는 이맘때면 사람들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특정 음식을 찾습니다. 개고기, 삼계탕, 수박….
음식의 힘을 빌려서라도 여름을 탈없이 나려는 본능의 흔적일 것입니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더위를 이기는 데 필요한 단백질과 미네랄 등의 영양성분을 섭취하는 것이고, 한의학적으로는 몸의 ‘열’을 내리는 행위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음식과 약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약선(藥膳) 요리는 이런 바탕에서 생겼습니다. 음식이 갖고 있는 본래의 성질과 약재를 조화시켜 몸의 기운을 돋우도록 한 것이 약선 요리입니다.
매년 복을 맞아 개고기와 삼계탕을 먹어 왔다면 올해는 약선 요리로 더위를 다스려 보는 것은 어떨지요.
여러분을 위해 신라역사문화음식연구원 차은정 원장이 더위를 이기는 약선 요리 한 상을 차렸습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차 원장은 조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원(한의학)에서 한방 지식을 쌓고 있습니다. 양쪽을 공부한 덕분에 한 가지 음식을 해 놓고도 동양과 서양의 두 가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약선 학과인 영산대 약선학과 초대 학과장을 지냈습니다.》
○ 음식과 약재의 조화
약선 요리라고 해서 약재 냄새를 폴폴 풍기는 한약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다면 착각이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일반 음식과 다르지 않다. 마치 공기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약재를 쓰되 눈에 띄지 않게 보완하는 것이 약선 요리다. 예컨대 열을 내려 주는 오가피 콩국수에서 오가피의 향을 느끼기는 힘들다. 조릿대 잎이나 연잎 삶은 물로 지은 밥이나 죽도 마찬가지.
약선 요리에서는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과 같은 옛 문헌에 나와 있는 약재의 성질과 음식 재료의 성질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차 원장은 “예를 들면 어성초는 비린내가 있어 비린 맛이 나는 음식과 궁합이 잘 맞고, 어혈을 제거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옛 문헌에 나와 있다”며 “이런 정보를 이용해 생선요리에 적용하면서 그 효용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어성초를 삶은 물에 고등어를 담갔다가 굽거나 어성초 가루를 고등어를 구울 때 뿌려 주었더니 비린내가 훨씬 덜 났다는 것.
어성초는 어혈을 풀어 준다고도 나와 있다. ‘어혈’을 식품영양학적으로 풀이하면 나쁜 지방산에 해당한다. 따라서 콜레스테롤이나 포화지방산이 많은 음식 재료를 조리할 때 어성초를 활용하면 좋다는 것이 차 원장의 설명이다.
○ 조릿대 잎 죽과 한천 미역 냉채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죽부터 약선 방식으로 조리할 수 있다.
더위로 인한 열을 내리려면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해 줘야 하는데 여름철에 구하기 쉬운 조릿대 잎은 더위를 식히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는 효과가 있어 안성맞춤이다.
여름철 더위를 먹었을 때는 이 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면 좋다. 조릿대 잎에는 방부작용이 있어 선조들은 여름철에 조릿대 잎으로 떡을 싸 두는 지혜를 발휘하곤 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주식인 밥을 할 때도 조릿대 잎을 활용했다. 연잎을 삶은 물로 밥을 지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사 전 입맛을 돌게 하는 전채로는 ‘한천 미역 냉채’를 추천했다. 약재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 본래의 성질을 이용한 약선 요리다. 한천과 미역, 배는 이뇨작용을 돕고 열을 식혀 주는 대표적인 식품으로 이를 조합해서 요리를 만든 것.
한천과 오이, 배를 채 썬다. 생미역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둔다. 간장, 술, 청고추 다진 것, 마늘, 참깨, 소금으로 만든 양념장을 한천, 생미역과 함께 버무린다. 그 위에 배와 오이, 토마토 등을 얹어 내면 된다.
우뭇가사리로 만든 한천은 식이섬유가 80% 이상 들어 있고 칼로리는 거의 없는 식품이다. 특히 대장의 연동 운동을 도와 노폐물 배설에 효과적이다.
미역은 한방에서는 찬 성질을 가진 음식으로 역시 이뇨작용과 노폐물 배설 작용을 돕는다.
○ 오가피 콩국수와 복분자 오리 토렴
여름이면 콩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차 원장도 한여름 입맛이 없을 때 콩국수만큼 좋은 음식은 드물다고 극찬했다. 콩국수의 주 원료인 메주콩은 식물성 단백질의 보고다. 여기에 비타민 E가 많은 열무 무청을 얹어 먹으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콩국수에 따뜻한 성질을 가진 흑임자(검은 참깨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를 넣어 주면 장을 보호할 수 있다.
차 원장은 메주콩을 삶을 때 오가피를 함께 넣어 만드는 ‘오가피 콩국수’를 추천했다. 오가피는 영양학적으로 칼슘이 많은 약재다. 한방에서는 따뜻한 성질을 지녔고 연골이나 근육, 관절에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다. 장이 차가워져 생길 수 있는 설사를 예방해 준다. 콩국수 전체로 볼 때 콩에 부족한 칼슘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복분자 오리 토렴’은 엄나무를 넣은 물에 오리고기를 삶아 복분자, 배, 사과, 양파 등으로 만든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다.
오리고기는 열을 내려 주면서 기운을 보충해 주는 육류다. 거풍 작용이 있어 풍을 막는 음식재료로도 알려져 있다. 엄나무는 오리고기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기능이 있어 궁합이 맞다. 엄나무처럼 가시가 있는 식물들은 대체로 자생력이 강해 한방에서는 사람의 기력이 쇠했을 때 종종 활용한다.
엄나무와 오리고기를 함께 삶으면 오리의 기름기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차 원장의 설명.
복분자는 기운을 돋우고 몸을 가볍게 하는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진액이 부족해 입안이 마르고 갈증이 날 때 효과적이라 한여름에 알맞은 음식 재료다. 영양학적으로는 사과산과 비타민 B, C가 많이 함유돼 있다.
마른 해삼과 닭고기, 구기자, 산사나무 열매 등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튀김요리가 ‘양삼탕’이다.
양삼탕을 만들 때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양의고’를 활용한다. 여름철 허해진 기를 돋우는 데 좋다.
‘바다의 삼’인 해삼에는 칼슘과 인이 적절한 비율로 들어 있어 혈압을 내리게 해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해삼은 성질이 아주 차기 때문에 몸이 냉한 사람이 자주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차 원장은 체질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산사나무 열매와 배, 양파, 마늘 등의 양념을 넣은 조리법을 제안했다.
약선 요리는 체질이나 몸 상태에 맞춰 먹어야 효과가 커진다. 여름철에 즐기는 삼계탕도 약선 요리의 관점에서는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차 원장은 “여름철에 삼계탕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고혈압 환자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며 “삼계탕을 끓일 때 넣는 황기는 고혈압이 있거나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말했다.
연근과 마는 그 자체가 열을 식혀 주는 음식 재료다. 평소 여름철 반찬으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연근을 껍질을 벗겨 식초와 소금을 넣은 물에 잠시 담가 두었다가 기름을 두르지 않고 구워 낸다. 마도 껍질을 벗겨 그냥 구워 낸다. 간장에 겨자를 풀어 연근과 마를 찍어 먹으면 별미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약선요리 3선▼
이름만 보면 국물이 많은 요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탕수육처럼 튀긴 요리에 ‘양의고 소스’를 끼얹어 먹는 메뉴다. 고소한 튀김 옷 속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해삼 맛이 인상적이다.
재료로는 마른 해삼과 닭날개 살, 구기자, 산사나무 열매, 죽순,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피망, 생강채, 쌀가루, 식용유 등이 필요하다.
양의고 소스에는 산사나무 열매 달인 물과 배즙, 양파즙, 마늘즙, 생강즙, 레몬즙, 양의고, 녹말가루가 들어간다. 양의고를 만드는 법은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 인삼과 숙지황 200g씩을 물 2L에 넣고 하루 정도 담갔다가 불에 올려서 절반으로 졸인 뒤 꿀 200g을 섞어서 만든다.
양의고 소스와는 별도로 산사나무 열매 달인 물과 배즙, 양파즙, 마늘즙, 생강즙, 레몬즙으로 만든 양념장을 준비한다. 여기에 물에 불린 마른 해삼과 닭날개 살을 1시간 이상 재워 둔다. 죽순 등의 채소는 깨끗이 손질해서 물기를 닦아 주고 쌀가루를 묻혀서 빨리 튀겨 낸다. 생강채도 역시 튀겨 낸다. 해삼과 닭날개 살도 건져내 쌀가루를 입혀 튀겨 낸다.
튀긴 해삼과 야채, 닭고기를 접시에 담고 양의고 소스를 뿌려 낸다.
◇오가피 콩국수
메주콩 특유의 고소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재료로는 메주콩과 오가피, 흑임자가루, 국수, 열무김치가 있으면 된다.
메주콩을 12시간 정도 불려 냄비에 담고 망에 넣은 오가피를 함께 담아 처음부터 같이 끓인다. 끓인 뒤 메주콩을 건져 찬물로 헹군 뒤 껍질을 깐다. 믹서에 콩과 소금, 오가피 삶은 물, 흑임자 가루를 넣고 되직하게 간다. 국수는 삶은 뒤 얼음물에 담가 면을 쫄깃하게 만들어 준다. 그릇에 국수를 넣은 뒤 콩물을 붓고 열무김치를 고명으로 얹어 낸다.
◇복분자 오리 토렴
복분자(산딸기) 소스의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오리고기와 엄나무가 주재료다. 소스를 만들 때는 복분자와 배즙, 사과즙, 파인애플즙, 양파즙, 마늘즙, 소금, 잣가루가 필요하다. 오리고기와 함께 내놓을 야채로는 보라감자, 겨자, 당귀잎, 생 숙주, 적 양상추가 적당하다.
엄나무를 넣은 물을 20분 이상 끓여 달인다. 여기에 오리살을 덩어리째 넣고 익혀서 얇게 썰어 둔다. 함께 낼 야채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해 둔다. 접시에 야채를 깔고 익힌 오리고기를 담아 낸다. 그 위에 복분자 소스를 끼얹어 준다.
▼ 후식으로 권할 만한 차▼
더위를 이기는 약선 요리를 한 상 차려낸 차 원장은 “음식을 먹고 나면 자신의 몸 상태를 반드시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 보라”고 제안했다. 머리가 아픈지, 속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약선 요리에서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식이다.
약선 요리는 조리사가 세수를 하고 단정한 옷을 입는 데서 시작한다. 조리사는 참선과 명상을 통해 자신의 기를 조리에 집중시킨다.
차 원장은 “할 일이 밀려 있다는 이유로 음식을 그냥 구겨 넣다시피 식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며 “더위를 타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려면 약선 요리 조리사가 음식 준비를 할 때처럼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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