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월가의 아인슈타인… ‘퀀트-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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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퀀트-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이매뉴얼 더만 지음·권루시안 옮김/466쪽·1만8000원·승산

세계 금융의 심장인 월스트리트에선 한때 그들을 POW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의 물리학자(Physicists on Wallstreet)’의 약자라지만 거기에 ‘포로(Prisoner of War)’라는 중의적인 뜻도 담겨 있었다. 이공계에서 자리를 못 잡고 금융계로 ‘팔려 온’ 신세에 대한 은근한 조롱이 담긴 말이었다.

그러다 퀀트(quant)라는 중립적 단어가 등장했다. 물리학의 기법과 수학의 언어로 주가와 금리의 함수를 풀어 내는 정량금융(quantitative finance)의 전문가라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 이매뉴얼 더만(사진)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공학 교수는 1980년대 초 월스트리트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 퀀트의 1세대로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된 전설적 존재다.

그는 제2의 아인슈타인을 꿈꿨던 물리학자가 어떻게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금융산업의 총아가 됐는지에 대한 자전적 책을 통해 베일에 싸인 퀀트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그저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는 흥분에 젖어 책을 펼친다면 기겁을 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려 내는 탐험로를 따라가려면 현대물리학의 ‘괴물’들과 싸워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강을 건너야 하며, 난해한 파생금융상품의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기괴한 정신세계를 아름답게 그려 낸 ‘뷰티풀 마인드’나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의 이론을 흥미롭게 소개한 ‘스트레인지 뷰티’와 같은 책도 있지 않은가. 더만은 그들보다 천재성이 2%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겸손하다. 고고한 상아탑을 박차고 벨연구소와 골드만삭스, 살로몬브러더스와 같은 풍진에 몸을 섞으면서 세상 물정을 읽는 지혜도 겸비했다.

“열예닐곱 때에는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스물한 살일 때는 파인먼 같은 사람이 된다면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스물네 살이 되자 리정다오 정도면 만족하겠다고 생각했다. 1976년(서른 살) 무렵 바로 옆 사무실에 있는 박사 후 연구원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발표자로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금융의 주식 옵션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기일이 다가옴에 따라 잠재가치를 잃어버린다. 옵션 이론가는 이를 ‘노후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의 짓궂은 풍자가 섞인 통찰은 곳곳에서 빛난다. 열여섯 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고 명문대에 입학했고 스무 살에 8000km 떨어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온 이 이방인이 노벨상 수상자와 예비 후보자가 득실거리는 미국 물리학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음에도 월스트리트로 흘러 들어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세계대전과 냉전의 승리를 위한 미국의 기초과학 투자로 폭발적으로 양산된 인력이 1970년대를 기점으로 갈 곳을 잃은 반면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채권 값이 급락하면서 금융시장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위기 관리를 위해 등장한 파생금융상품은 고도의 수학과 응용물리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함께 요구했다. 여기에 부합하는 팔방미인의 인재는 오히려 세속적 성공을 경멸하며 저임금 속에서도 온갖 기초과학을 섭렵해 온 물리학도였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기초과학 투자가 냉전기 군사 강국을 만든 초석인 동시에 탈냉전기 금융 강국의 토대를 마련하는 양수겸장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20세기 첨단 무기의 생산 도구였던 물리학이 21세기 첨단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는 이 아이러니 가득한 변주를 저자만큼 절감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저자는 신의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하는 물리학보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만드는 금융세계를 탐구하는 경제학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신은 외통수로 몰리면 패배를 시인하지만 자신의 덧없는 의견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은 패배해도 패배한 줄 모르고 계속 다른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금융 이론은 ‘상식보다는 약간 더 북쪽에, 그러나 우상화보다는 약간 남쪽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저자의 충언은 어쩌면 경제학을 포함한 모든 인문사회과학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원제 My Life as a Quant(2004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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