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폭력의 세기’ 희망의 생명수를 찾아…‘바리데기’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 바리데기/황석영 지음/301쪽·1만 원·창비

바리공주는 불라국 오귀대왕의 일곱째 딸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져 궁 밖에서 자라났지만 10대에 병든 부모와 해후한 뒤 부모를 구하고자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고생 끝에 생명수를 구한다.

‘바리공주’ 설화는 한국 페미니즘의 중요한 서사로 꼽히지만 작가 황석영(64·사진) 씨는 한 소녀의 효심에서 세계를 구원하려는 의지를 보았다. 황 씨의 장편 ‘바리데기’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무대로 끌어낸 작품이다.

현대의 바리는 공주가 아니다. 그는 함북 청진 항구 사무직원의 일곱째 딸로 났다. 아들을 기대한 부모에겐 구박덩이지만 막내딸에게는 영혼이나 귀신 짐승 벙어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바리는 전설의 바리공주처럼 떠돌게 된다.

작가는 바리의 발걸음을 통해 북한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기근과 홍수로 죽어 가는 사람들, 국경 일대에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탈북 주민들, 빚 때문에 밀항선에 올라타고 인신매매단에 성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여성들…. 저자가 “지금, 돌아보지 않는 우리 집 뒷마당”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바리’(버려졌다는 뜻)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버려진’ 곳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면서 작가는 뒷마당에 무뎌진 독자들을 일깨운다.

황 씨의 관심은 탈북 소녀 바리가 떠도는 서사에 더욱 모아진다. 3년째 유럽에 체류 중인 작가는 세계의 화두가 ‘이동과 조화’라는 것을 깨닫는다. 민족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섞이고 상생을 모색하는 게 오늘날 세계의 이슈임을 알고, 작가는 중국에서 떠돌던 바리를 영국 런던으로 보낸다. 발마사지 업소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 가는 바리가 만난 배우자는 파키스탄인 알리다.

바리공주가 생명수를 구하듯 탈북 여성 바리는 아이를 갖는 것으로 구원을 꿈꾼다. 그렇지만 소설의 마지막은 2005년에 있었던 런던 폭탄테러 장면이다. 폭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 시민’인 바리와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구원의 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작가는 소설 속 압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부르짖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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