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발랄한 ‘동안’은 여전하지만 이젠 제법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80년생 소이. 외국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아직까지 만 나이로 26세라며 두 살이나 더 먹어야 되는 한국식 나이에 대해 “까끌까끌하다”는 독특한 형용사로 거부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 ‘까끌까끌한’ 시간만큼이나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아이돌 이미지’를 떼고자 부단히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2005년 작 ‘가발’에 이어 11일 개봉한 ‘해부학교실’(감독 손태웅, 제작 에그필름)로 천천히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소이는 “뒤늦게 내가 연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돌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를 벗고자 2~3년간 잠수를 탔다”고 말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는지 금세 커다란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사실 가수는 아르바이트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철없던 어린시절을 반성한 소이. 친구 따라 덜컥 붙은 오디션 덕분에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원래 꿈은 의사 아니면 라디오 PD였다고. ‘티티마’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그렇고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내가 왜 이 세상에 있나’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몇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연기’라는 답을 찾았다고 한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안에 꾹 눌려있던, 폭발하지 못한 감성들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 남들보다 감성의 촉수가 다섯 배는 긴 채 살아왔거든요. 이를 깨닫고 뒤늦게 연기를 통해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하지만 소이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겉모습이 다는 아니지만 순백의 도화지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빨아들여야 하는 배우로선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그녀의 이름 뒤에 새겨졌다.
소이는 무척 억울했다. “오디션 좀 보게 해 주세요”라고 외쳤지만 결과는 ‘우울’했다. 대중이 떠올리는 ‘발랄한 소이’와 그녀 안에 자리 잡은 ‘수많은 소이’들이 어둠 속에서 충돌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솔직히 내게 독이 됐다. 가수로 데뷔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는 소이는 “아이돌 이미지를 깨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가수가 연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를 과소평가하는 대중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꾸기란 정말 힘들다”며 울상 지었다.
“저도 약간 후회해요. 좀더 빨리 내 정체성 찾아 가수로 출발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전 무얼 하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더 빨리 연기자가 됐을까요? 그런데 그건 또 아니에요. 내게 아이돌이라는 중간 과정이 없었다면 고뇌와 절망 속에서 바라본 희망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소이는 “아무 준비 없이 참여한 ‘가발’에서 연기가 안겨주는 카타르시스를 처음 느꼈다”면서 “내 삶이 연기를 필요하고 내가 연기를 사랑하는 구나 느끼며 기회를 기다리던 찰나 ‘해부학교실’에 출연하게 됐고 이를 통해 배우 소이를 알릴 수 있어 너무 뿌듯하다”며 활짝 웃어보았다.
이어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뜨는 걸 보니 ‘내가 진짜 배우가 됐구나’ 실감이 났다”면서 “그동안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다. 연기는 내 스스로를 치유하는 최고의 도구”라고 들뜬 목소리로 연기 예찬론을 펼쳤다.
“요즘 제가 제일 기쁜 게 뭔 줄 아세요? 포털 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치면 이젠 더 이상 가수가 아닌 ‘영화배우’로 분류돼 있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처음 본 순간 너무 감동해 오랜만에 머리를 토닥토닥하며 잘했다고 칭찬해줬어요.”
‘중고 신인’ 소이에게 배우의 세계란 “설레고 떨리는 한편 여전히 무서운 곳”이지만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확신하는 ‘계시’가 있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있고 각자 해야 할 일이 꼭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그녀의 ‘비전’을 한번쯤 믿어보는 건 어떨까.
스포츠동아 이지영 기자 garumil@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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