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1주기(1995년)에 맞춰 그의 육필 원고를 모은 ‘희랍철학논고’가 첫 권으로 나온 지 12년 만이다. 이처럼 오래 걸린 이유는 ‘형이상학강의1’ ‘형이상학강의2’ ‘플라톤 후기철학 강의’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강독’에 이르는 2∼5권이 60분짜리 테이프 100개 분량의 강연록을 제자들이 필사하고 토론해 문장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말 일본 와세다대에서 철학에 입문했는데 독일철학 위주였던 당시로는 드물게 희랍철학과 프랑스철학을 파고들었다.
서양 학문의 원천인 희랍철학과 기독교철학 그리고 그 명맥을 계승한 프랑스철학의 핵심을 꿰뚫기 위해서였다. 1946∼84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행정직도 거의 맡지 않고 형이상학 연구와 제자 육성에만 몰두했다. 저술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제자들은 스승이 학문적 열정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자취를 거의 남기지 않은 점을 들어 소크라테스에 비유하곤 했다. 그 안타까움을 덜기 위해 일부 제자가 1976년부터 스승의 강연을 녹음하기 시작했고 스승의 사후 전집으로 엮었다.
강연 도중 그와 토론하는 인물들이 현재 한국 철학계를 이끄는 동량이라는 점에서 고인의 내공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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