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토니상 8개 휩쓴 뮤지컬…브로드웨이 ,‘사춘기’를 앓다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1분


브로드웨이가 요즘 ‘사춘기’로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뮤지컬의 메카’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티켓을 가장 구하기 힘든 작품이 바로 ‘사춘기(Spring Awakening)’. 지난달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 등 8개나 휩쓴 뒤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 중이다.

14일 공연장을 찾았을 때 1000석 넘는 극장에 빈 좌석은 단 하나도 없었고, 표를 구하지 못해 ‘입석(Standing)표’를 사서 들어온 관객들은 극장 맨 뒤편에 서서 공연을 지켜봤다.

‘사춘기’를 보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에서 왔다는 넬리(21)라는 대학생은 “학생 할인 좌석 티켓을 사려고 오전 7시 반 매표소에 나갔지만 이미 80명도 넘게 줄을 서 있어 3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입석표를 구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봄이 깨어날 때’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작품은 1891년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가 쓴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성에 막 눈뜨기 시작한 14, 15세 청소년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섞인 감성을 그려냈다. 청소년의 성을 정면으로 다룬 데다 낙태, 동성애, 자위행위, 마조히즘과 사디즘이 등장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한동안 공연이 전면 금지됐던 연극이었다.

뮤지컬 ‘사춘기’의 최대 화제는 성행위 장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경우 누드 출연이 화제가 되는 사례는 간혹 있지만, 무대에서 성행위 자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만은 피해 왔다. 한데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표현 수위가 ‘셌다’.

남녀 주인공인 10대 소년 소녀 멜키오와 벤들라의 성행위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그 과정에서 멜키오의 엉덩이와 벤들라의 한쪽 가슴도 짧게 노출된다. 1막을 이 장면으로 끝맺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인 듯, 중간 휴식 시간 내내 관객들은 이 장면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성행위 장면과 상관없이 사실 이 뮤지컬의 매력은 19세기에서 어느새 21세기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만드는 음악과 조명에 있다.

19세기 청소년들의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하던 배우들이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무대는 오늘날로 훌쩍 시간을 뛰어넘는다. 무대 위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 배우들은 품 안에서 핸드 마이크를 꺼내들거나 흡사 로커처럼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은 채 얼터너티브 록 음악으로 젊음의 열기를 마음껏 뿜어냈다. 중독성 강한 음악에 맞춤복처럼 꼭 맞게 안무된 춤도 빼어났다.

19세기 분위기를 단숨에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로 바꿔 놓는 조명의 힘도 뛰어났다. 세트 전환이나 의상 변화 하나 없이 오직 조명만으로 똑같은 무대에서 전혀 다른 시공간인 두 세계를 빚어낸 셈이다.

이 작품에서 부모 및 교사, 목사, 의사 등 기성세대의 역할은 남녀 배우가 1인 다역으로 맡는다. 위압적이고 틀에 박힌 기성세대는 결국 모두 똑같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했다. 코미디가 강세인 브로드웨이의 흐름과 달리 ‘사춘기’는 기성세대의 강요와 억압으로 빚어진 죽음으로 어둡게 끝난다.

웃음과 한숨을 번갈아 토해 내며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원 기립박수를 보냈다. 뮤지컬 ‘사춘기’는 누구나 한 번쯤 힘겹게 겪었을 질풍노도와 같은 그 시절, 그 나이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을 2시간 15분간 다시 ‘선물’해 주는 작품이었다.

뉴욕=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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