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파리가 주인공이라고 눈살부터 찌푸리지 말 것. 이 파리는 대단히 선진적인 벌레다. 아마도 직장에 다니는 듯, 여름휴가를 가겠단다. 파리의 휴가 스케줄은 수영장 가기. 게다가 준비성도 좋다. 비치백에 선크림에 타월에 물놀이공까지,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신중하기도 해서, 물이 너무 차갑지는 않은지 한 발 두 발 담가 본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폴짝폴짝 뛰면서 물놀이를 하는 파리. 도대체 파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물놀이를 하는 곳은 어딜까?
이 짧은 그림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은 신날 듯. 어른들은 늘 ‘우리 꼬마’ ‘우리 아기’라며 귀여워해 주지만, 조금만 커버리면 아이들은 그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내가 왜 꼬마야!”라며 분통 터뜨리는 아이들에겐, 한없이 작은데 물놀이 하겠다며 폼 잡는 주인공 파리가 모처럼 우스워 보이는 존재일 것.
화면 가득 찰랑찰랑 물에서 놀고 있는 파리를 보면, 이 더운 여름날 절로 수영장에 가고 싶다. 그런데 파리의 수영장, 좀 이상하다. 갑자기 컴컴해지면서 천둥소리가 우르르 들린다. 이 천둥소리 꽤 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진난만하게 “폭풍이 오나 보네” 혼잣말 하는 파리. 우산을 가져올걸, 싶다.
웬 날벼락! 하늘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돌 같은 뭔가가 파리를 향해서 내려오는 것이다. 첨벙!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 파도가 휘몰아치고. 뒤이어 들리는 소리. “엄마, 엄마! 나 다 했어!” 이쯤 되면 어딘지 짐작이 될 것. 파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은, 변기!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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