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미술전시회 ‘기획실명제’ 도입해야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가짜 학위도 문제지만 가짜 기획도 심각한 문제다. 남이 기획한 전시를 자신의 기획이라고 말하거나 슬쩍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행위, 이것도 표절이다.”

신정아(사진) 씨의 가짜 학위 파문을 계기로 미술 전시에 ‘기획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신 씨가 스스로 기획했다고 내세운 전시 가운데 다른 사람의 기획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신 씨가 금호미술관 시절 기획했다는 ‘호안 미로’나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와 같은 전시는 전임 큐레이터와 객원 큐레이터가 이미 기획해 놓은 전시였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신 씨의 역할은 기획이 아니라 진행이었다.

전시 기획력이 큐레이터의 중요한 평가 기준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신 씨가 출세 가도를 달리는 데 있어 가짜 학위뿐만 아니라 가짜 기획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큐레이터의 학력과 경력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시 기획자를 정확하게 공개하는 ‘기획 실명제’ 분위기를 정착시켜야만 제2의 신정아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그동안 관행상 또는 인정상 실제 기획자를 밝히지 않고 이런저런 관계자들을 기획자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 그 같은 관행의 피해는 결국 큐레이터 자신에게 돌아가고 만다. 이제는 도록이나 홍보 자료 등에 실제 기획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공개하는 풍토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순수하게 개인의 기획인지, 공동 기획인지, 기획이 아니라 진행만 했는지 등을 엄격히 구분해 철저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외국에서 기획된 전시를 들여올 경우에도 ‘외국 기획’이라는 점을 명백히 알려야 한다. 이미 기획된 외국 전시를 들여와 장소만 빌려 주었다면 그건 기획이 아니라 진행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전시 아이디어를 내고 작품을 선정하고 관련된 글을 썼을 때에만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기획과 진행은 엄밀히 다르다”면서 “외국의 기획인지, 객원 큐레이터의 기획인지 등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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