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좋은 관객이 좋은 공연 만든다<상>링컨센터 예술교육현장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44분


예술교육의 기본은 열린 질문 던지기. 모든 대답이 정답이 되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키우고 예술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운다. 사진 제공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예술교육의 기본은 열린 질문 던지기. 모든 대답이 정답이 되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키우고 예술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운다. 사진 제공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예술교육프로그램 참가자들. 미술작품에서 보고 떠오른 단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수업이다.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예술교육프로그램 참가자들. 미술작품에서 보고 떠오른 단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수업이다.
《1972년 4월 17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의 1면 톱기사는 우주선 아폴로 16호의 발사 소식이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인 만큼 전쟁 뉴스도 1면을 차지했다. 이처럼 우주선 발사와 전쟁 소식 틈에서 1면에 자리 잡은 문화 기사가 있었다. 링컨센터가 제안한 젊은층을 위한 혁신적인 예술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기사였다.

아이들을 공연장으로 불러 관람시키던 기존 교육 프로그램을 버리는 대신 학생과 예술가, 교사, 그리고 공연장이 함께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 이에 따라 탄생한 것이 세계적인 예술교육의 모델로 꼽히는 링컨센터 산하 링컨센터 인스티튜트(LCI)다.

7월 16∼20일 5일간 미국 뉴욕 LCI에서 열린 예술교육 과정을 들여다봤다.》

처음엔 공연장을 자발적으로 찾아 자리를 메워 줄, 그런 ‘좋은 관객’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스콧 브랜슨 LCI 소장은 “우리 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미래의 유료 관객(paying audience)’을 길러 내는 게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말하는 ‘좋은 관객’의 의미는 ‘창의력을 갖고 자신만의 시각을 지니고 있는 시민’에 가까웠다.

LCI 예술교육 과정도 첫날에는 어리둥절했다. 25여 명의 참가자에게는 눈을 감고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를 말하라거나, 달랑 종이 한 장을 놓고 이를 3차원의 개념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라는 과제를 던져 줬다. 그리고 닷새 내내 이어지는 질문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무엇을 느꼈느냐” “어떤 점이 끌리느냐”….

한 가지 독특했던 점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작품)을 유심히 관찰하고 귀를 기울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도 스스로를 소개하는 대신 옆에 앉은 사람의 이모저모를 알아낸 뒤 서로를 소개해 주는 식이었다.

이튿날 미국의 설치미술가 리처드 세라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방문했다. 초대형 설치 미술로 유명한 세라의 작품을 놓고 또다시 질문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정답은 없었다. “이 작품의 제목을 뭐라고 붙이고 싶은가? 그리고 그 이유는?”처럼 애초에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LCI의 프로그램 디렉터 캐서린 윌리엄스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open-ended) 질문 하기, 귀 기울이기, 그리고 상대방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려 주기”라며 “예술교육의 본질은 예술에 대한 기교(skill)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 내는 방법(method)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방문 후 참가자들은 팀을 이뤄 24m에 이르는 대형 입체구조물을 골판지 소재로 만들어 봤다. 보스턴에서 온 성악가 세라 위즈웨거 씨는 “직접 대형 작품을 만들면서 공간과 건축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미술관에서 본 작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LCI 예술교육의 핵심은 질문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 감상과 예술 작업에의 직접 참여로 이뤄진다.

LCI 프로그램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지만 대부분 미국 전역 및 외국에서 찾아온 초등∼고등학교 교사와 현업 예술가 또는 공연관계자들이다.

브랜슨 소장은 “아이가 발레 한 편을 봤다고 곧장 예술적 감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느끼도록 가르쳐 훌륭한 ‘문화매개자’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LCI의 교육을 이수한 많은 현장 예술가 중 희망자는 선발과정을 거쳐 ‘티칭 아티스트(TA·Teaching Artist)’가 돼 각 학교에 파견 나간다. 말 그대로 ‘가르치는 예술가’다.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LCI 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돼 예술교육 과정을 밟은 아동청소년 연극집단 무동의 엄문용 대표는 “지금까지 놀이연극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자극하고 즐겁게 해 주는 데 치중했는데 LCI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발견해 나가도록 해 주는 예술교육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뉴욕=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링컨센터 인스티튜트(LCI):

1975년 설립된 뒤 미국 내 21만7000개 학교에 TA를 파견하는 등 세계 1300만 명의 아이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해 왔다. LCI는 예술교육을 요청하는 학교에 손쉽게 파견할 수 있는 음악, 무용, 연극 등 장르별 투어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건물 내에도 자체 소극장, 무용 전용극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 소속된 TA는 100여 명. 올해 예산은 700만 달러에 이른다. 미국 내 24개 공연장이 LCI의 교육 과정을 모델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호주 홍콩 멕시코 등 해외에도 이 모델을 딴 교육기관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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