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수업]자식도 남편도 남같은 노년

  • 입력 2007년 7월 27일 03시 00분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익숙한 번호였다. 여고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보나마나 자기 외로움이나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호소하는 전화일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꽤 있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누구나 만족스러운 관계를 꿈꾼다. 관계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 일차적인 대상이 가족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50대가 되면 평생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들이 곁을 떠난다. 결혼을 해서 떠나는 경우도 있고, 결혼하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이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같이 살고 있다 한들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배들에게서 “기저귀 찰 때가 진짜 자식이야”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밤잠 못 자면서 기저귀 갈아 채워야 하는 고달픈 시절을 지낸 엄마들이 팔자 좋게 하는 소리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 가면서 “그 말이 맞구나” 하고 새삼 절감했다. 기저귀를 떼면 그때부터 아이는 자기 존재를 구축하며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한다. 저 혼자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돼 간다. 그러면서 부모, 특히 엄마에게서 서서히 멀어진다.

많은 여성은 애지중지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느라 떠나보낼 준비를 못한 채 중년을 맞는다.

물론 아이가 언젠간 떠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기저귀 채우고 젖먹일 때와 똑같은 심정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자기를 떠나버린, 완전히 떠나버린 아이를 느낀다. 그럴 때면 쓸쓸하다 못해 서럽다. 상실감을 넘어 쓰디쓴 배신감까지 느낀다.

어디 이뿐인가. 이젠 세월을 건너 남편도 타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때맞춰 폐경이 찾아오고, 자기 앞에 인생의 노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각이 외로움과 울적함을 가중시킨다.

내게 전화를 건 친구는 애완동물에서 해답을 찾았다. 친구는 “강아지를 안으면 따뜻해” 하며 “앞발을 모으고 나만 쳐다보는데 눈물이 나는 거 있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꼬리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흔들면서 달려들어” 하면서 감격한다.

친구가 강아지에게서 위안을 삼는 것이 다행스럽다. 그러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강아지가 죽거나 집을 나가버리면 또 어쩌려고….’

인간은 정도만 다를 뿐이지 모두 관계에 집착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고, 또 그 과정을 즐기려는 노력이 노년의 화두 아닐까.

이청해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