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떠난 배목사, 하늘서도 사랑 실천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7월 27일 03시 00분



그것은 부모를 잃은 천붕(天崩) 못지않은 크고 아픈 슬픔이었다.

마흔 두 번째 생일에 그는 가족들에게 기쁨 대신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샘물교회 배형규(42·사진) 목사의 사망 사실이 공식 확인된 26일. 그의 가족들은 외부와 일절 연락을 끊은 채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의 고향인 제주에 사는 아버지 배호중(72) 씨와 어머니 이창숙(68) 씨는 밤샘 기도를 하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뒤 탈진 상태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 씨 부부가 사는 제주시 일도2동 S아파트의 현관문에는 그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지금은 부재 중’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의 부인 김모(36) 씨와 초등학교 3학년인 딸(9)도 분당의 모처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며 슬픔을 이겨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형(45)은 “조카(배 목사의 딸)가 아직까지 아빠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있어 현재 가족들의 심경을 밝힐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던 ‘20대 청년’이었다. 늘 열정적인 그를 보며 그의 친구들은 “너무 바빠 늙을 시간도 없는 친구”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그의 대학원 동기인 남형우 서울 광장교회 목사는 “배 목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따뜻한 성품에 감복했다”며 “그를 만나면 목회 이야기 아니면 딸 이야기뿐일 정도로 딸을 끔찍이도 예뻐했다”고 전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지 석 달 만인 이달 13일 교회 청년회원 19명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는 아프간에서 돌아오면 우간다 등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빽빽했던 그의 일정은 25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빈곤의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가족들은 “배 목사가 평소 ‘살아서만 남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조금이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수년 전 ‘장기기증 신청서’를 써 놓았다”고 전했다. 그의 부인도 최근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 이식을 해 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가족은 26일 의료연구용으로 기증하기 위해 ‘시신을 잘 처리해 한국으로 운송해 달라’는 요청서를 외교통상부에 제출했다.

그의 시신이 한국에 도착하면 분당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지며 장례 절차가 끝난 뒤 시신은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인도된다.

애타는 피랍자 가족들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된 피랍자 가족들은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에서 우리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정부, 탈레반 무장단체에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가족대표가 호소문을 낭독하자 납치된 제창희 씨의 어머니 이채복 씨(오른쪽)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애타는 피랍자 가족들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된 피랍자 가족들은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에서 우리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정부, 탈레반 무장단체에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가족대표가 호소문을 낭독하자 납치된 제창희 씨의 어머니 이채복 씨(오른쪽)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