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인질 1명 살해’ 주장이 결국 26일 희생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탈레반에 피살된 사람은 봉사단을 인솔한 배형규(42) 목사.
탈레반은 무슨 이유로 배 목사를 희생자로 선택했을까. 우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그가 기독교 성직자라는 사실에 극도의 적대감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22일 피랍 한국인에 대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선량한 무슬림을 개종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대부분)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사살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정권 장악 시절인 2001년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는 등 타 종교에 배타적 태도를 보여 왔다. 탈레반 지휘관 압둘라 잔의 대변인은 23일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에 “인질을 잘 대해 주고 있다. 우리(이슬람교도)는 개로 하여금 사람을 물도록 하는 기독교도나 유대인이 아니다”며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 23명을 자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5명의 남성 중 배 목사가 봉사단의 리더이며 기독교 성직자라는 사실을 파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독교 성직자라는 사실에 탈레반이 자극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이 배 목사를 살해하면서 머리와 가슴, 배에 무려 10발의 총격을 가하는 잔인한 수법을 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슬람의 여성보호 의무 교리도 남성 중 리더인 배 목사가 희생자가 된 이유로 볼 수 있다. 코란 4장 34절에는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는 구절이 있다. “여자들이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사살했을 것”이라는 아마디의 언급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배 목사가 건강이 악화돼 살해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탈레반은 암벽과 미로를 이용해 인질들을 수시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 목사는 2004년 호흡기 관련 질병을 앓아 1년 동안 고향 제주도에서 요양을 했고 최근에도 약을 복용해 왔다.
열악한 억류 생활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그가 제대로 걷지 못해 이동작전에 차질이 생기자 탈레반이 그를 사살했을 수도 있다.
AP통신은 현지 경찰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배 목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해 총으로 쏴 죽였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22일에도 독일인 인질 2명 중 당뇨병을 앓던 1명이 이동 중 쓰러지자 총으로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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