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봉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 타계

  • 입력 2007년 7월 31일 02시 59분


‘화니와 알렉산더’를 연출한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사진)이 스웨덴 고틀란드 섬 북부 포뢰에 있는 자택에서 30일 타계했다. 향년 89세.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으로 꼽혀 온 베리만은 ‘산딸기’ ‘어두운 유리를 통해’ ‘침묵’ ‘페르소나’ ‘치욕’ ‘마적’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화니와 알렉산더’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생전 4차례나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현대 영화사에 새로운 좌표를 그린 그의 작품들은 ‘스크린 위에 쓴 형이상학’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의 형이상학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밀착해 있었다. 1950, 60년대 작가주의 감독의 대표 격인 그는 영화를 원시적인 매체일 뿐이라고 얕보던 지식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며 유럽의 예술영화 지형도를 이끌었다.

191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리만 감독은 생전 6명의 여성과 결혼했고 60여 편의 영화와 10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1946년 영화 ‘위기’로 데뷔한 그는 1956년 ‘한여름밤의 미소’로 주목을 받았다. 195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제7의 봉인’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며 죽음과 맞대결을 선언한 작품으로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폭력과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에 대한 신의 구원,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탐색해 온 베리만 감독은 1960년대 후반부터 영화적 주제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연극 공연 중 침묵에 빠진 한 여배우와 간호사의 만남을 통해 모성의 역할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 ‘페르소나’(1966)가 그 작품. ‘외침과 속삭임’(1972)은 죽어가는 한 여성을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치밀한 심리극이며, 잉그리드 버그먼의 마지막 영화였던 ‘가을 소나타’(1978) 역시 어머니와 딸의 뼈아픈 재회를 소재로 한 영화다.

미국 감독 우디 앨런은 1988년 베리만 감독의 70회 생일을 맞아 “모든 면을 고려해볼 때 그는 아마도 영화 촬영기기가 발명된 이후 가장 위대한 감독(film artist)”이라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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