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운 지구/데이브 리 지음·이한중 옮김/276쪽·1만2000원·바다출판사
‘자연을 보호하자.’
너무나 익숙한 표어. 그러나 그 속에 숨은 맹점을 아는가.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수 없다. 수천 년 동안 지구가 인류의 보호자였다. 사람은 자연이 키운 수백만 종의 생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키우고 보살폈으나 해코지만 한 ‘웬수 같은’ 자식이다.
대지는 더는 어리광을 받아줄 수 없다. 늙고 지쳐버렸다. 미국 생태주의자 헬렌 니어링이 추구했던 ‘조화로운 삶’이 깨진 것이다. 그제야 부모를 돌아본 아담. 할 일은 보호가 아니라 용서와 각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언제쯤 다시 숲으로 돌아갈까’와 ‘너무 더운 지구’는 비망록이다. 이미 자연에 용서를 구하고 있는 이들의 경험담이다. 한 명은 스스로 벌이라도 받듯 세속을 떠나 숲으로 향한다. 다른 이는 우리의 삶에 일침을 놓는다. 감화가 먼저인가, 복음이 먼저인가. 살갗을 스치는 섬뜩한 부끄러움은 매한가지다.
‘사람은 언제쯤…’은 단순하다.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귀화한다. 전기와 수도, 시계조차 버린다. 작은 오두막에서 최소한의 텃밭만 일구며 산다. 1978∼82년, 4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깊은 숲에서 지낸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한들 쉬울까. 외로움은 최대의 적이다. “고독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순간, 내가 아직 온전히 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혼잣말에 담담해지고 시간을 잊어야 한다. 사슴과 비둘기, 꽃과 나무처럼 숲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홀로 싸우는 저자에게 헨리 D 소로의 수필 ‘월든’은 한 줄기 빛이었다. 자신보다 100여 년 앞서 자연에서 살아간 기록은 성경이자 생존서였다. “나는 홀로 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금까지 고독만큼 유쾌한 벗을 발견하지 못했다.” 숲 속의 고독은 격리가 아니었다. 더 크고 더 많은 친구, 자연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사람은 언제쯤…’은 흔한 삽화 한 장 없지만 깊고 넓은 세계가 펼쳐진다. 과학이나 탐험이 아니라도 대발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 땀씩 바느질해간 퀼트(quilt)처럼 하나하나의 글자가 살아 숨쉰다. 느리게, 그리고 작게 소리 내어 읽어보길. 숲이 천천히 두 팔을 벌린다.
‘너무 더운 지구’는 명쾌하다. 당신이 누리는 안락한 삶이 지구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따진다. 조그마한 변화가 인간과 지구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교토의정서를 저버린 조지 W 부시의 인형을 개에게 던져주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부터 줄이기로 결심했다. 내 몫을 하기로 했다.”
저자는 평범한 미국의 4인 중산층 가정에 돋보기를 댄다. 가상의 존 카본 가족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살펴본다. 남편의 자가용이 내뿜는 온실가스는 1년에 12t이 넘는다. 아내가 할인점에서 장 보는 데 4t, 집안 냉난방으로 13t을 배출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강아지 산책시키러 공원에 가는 것도 연간 3t의 온실가스를 만든다.
저자는 영국 에든버러대 자연환경조사위원회의 연구 교수.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몸서리치게 잘 안다. 강박증으로 느껴질 정도로 온실가스와 관련된 사소한 모든 것을 파고든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던 이 지구가 ‘타오르는 붉은 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열변이 귓가에 쟁쟁하다.
이제 결정은 우리 손에 달렸다. 후손들에게 푸른 강산을? 아니다. 환경은 현 세대의 문제다. 머나먼 남극 얘기가 아니다. 여름은 자꾸 더워지고, 봄가을은 갈수록 짧아진다. 숲으로 돌아가 회개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조금씩 삶의 태도라도 바꿔야 한다. 자연이 인간을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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