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Futures)시장은 곡물이나 외환, 주가지수의 장기 또는 단기적인 미래 가치를 둘러싸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의 파운드나 달러 가치를 미리 예측해 구입한 뒤 나중에 그 차액으로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시장이다. 그러기에 선물시장은 투기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장의 변동을 반영하는 것도 없다.
이 책은 금융선물시장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오 멜라메드(사진)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명예회장의 자서전이다. 그는 양파 달걀 냉동돈육 거래에서 출발해 외환, S&P 주가지수, 24시간 거래를 위해 개발된 장외 선물거래시스템인 글로벡스로 선물시장을 확대시켰다. 그러기에 다양한 선물상품이 개발된 과정,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CME와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싸움, 선물시장을 범죄시하는 언론이나 당국과의 신경전 등이 생생한 일화로 등장한다.
1987년 10월 19일 주가대폭락(블랙 먼데이) 때 CME의 리더인 저자는 세계시장의 붕괴를 우려하며 생애 가장 긴 하루를 보낸다. 위기를 초래한 ‘범죄자’로 CME가 지목됐으나 저자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기민하게 대응했다. 선물시장에 대한 난폭한 공격이 이어지고, 거래 조작 혐의로 수사도 받았으나 3년 뒤 CME는 세계 금융의 귀중한 시장으로 인정받았다.
국제통화선물시장(IMM)의 창립에 얽힌 일화도 감동적이다. 그는 1970년대 초반 외환이 선물상품으로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종류의 ‘나랏돈’을 선물로 거래하겠다는 이 아이디어는 혁명적이었다. 당시 ‘미스터 자유시장’으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는 소논문을 저자의 요청으로 써줬는데, ‘원고료’가 5000달러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저자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 초반 브레턴우즈체제(고정환율제)가 붕괴되고 영국 등이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면서 결실을 본다. 특히 1976년 멕시코 페소화가 50% 폭락하자 미국 정부는 저자에게 페소화가 거래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며 “그렇지 않으면 멕시코 정부가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1939년 홀로코스트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직전 부모와 함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당시 8, 9세였던 그는 탈출 과정에서 ‘위기 해결사’ 아버지의 기민한 판단을 몸에 익혔다. 어머니는 늘 “조심해라. 바로 다음 길모퉁이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며 ‘리스크 관리’를 일깨웠다. 변호사로 출발한 그는 어릴 때부터 정글같은 선물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감각을 익혔던 것이다.
멜라메드는 “시장은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유시장주의자다. 그런 그에게 선물시장은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시장답게 돌아가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가졌다. 그 비전은 선물시장에 그대로 투영됐다. 선물시장의 아버지라는 별명은 비전의 다른 이름이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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