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이가 ‘나리 저는 하마 죽어 있쉼더. 더 살고 싶지 않쉼더’라며 몬 온다고 그럽디더.”
‘춘향전’의 배경은 전라북도 남원. 그러나 무대에서는 경상도 안동 사투리가 쏟아져 나온다.
잠시 후 무대 다른 한쪽에서 똑같은 대사가 이번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튀어나온다. “춘행이가 자기는 못 오겠다고 그러든디요.”
6일 오후 9시.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하 연습실. 이곳에서는 31일 막을 올리는 연극 ‘변’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변’은 고전 ‘춘향전’을 재해석해 만든 작품. 똑같은 작품을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 등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든다. 시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황지우 씨가 쓴 희곡을 ‘칠수와 만수’ ‘늙은 도둑 이야기’ 등을 만들어 온 연출가 이상우 씨가 개작과 연출을 맡았다.
이 연출과 극단 연우무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강신일 최영민 김승욱 박광정 문성근 민복기 등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마르고 닳도록’ 이후 2년 만에 다시 뭉친 작품이기도 하다.
○ 시인 변학도 vs 독재자 변학도
‘춘향전’을 토대로 삼았지만 성춘향과 이몽룡은 대사 속에서만 나올 뿐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변학도. 당대 명문인 성균관 79학번 출신이며 연애시인으로 명망도 높지만 춘향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각종 폭정을 저지르며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인물이다.
변학도 역을 맡은 강신일 씨는 “변학도는 권력을 이용해 민중을 수탈하는 독재자이면서 당대의 연애시인이자 사랑 앞에 이성이 무너지는 다중적이고 복잡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제목 ‘변’은 말 그대로 ‘똥’을 뜻하기도 하고, ‘변학도’로 대표되는 역사 속의 독재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독재자를 ‘똥’으로 비하하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겼다.
실세인 척하는 이방은 겉으로는 큰소리치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빌붙는 힘없는 지방 유지. 이방 역을 맡은 박광정 씨는 “나쁜 역 같지만 실제로는 권력 앞에서는 약해지는 보통 사람들을 투영하는 캐릭터로 일반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안동 사투리 vs 남원 사투리
“변학또? 술이라믄 두주불사하고 장안에서는 한 문장 날린다 카데.”
“그란디 성벽이 좀 괴퍅허고 영 예측을 헐 수가 없는 캐릭터인거라.”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공연이 두 가지 사투리 버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변상도’팀은 억센 안동 사투리로, ‘변라도팀’은 춘향의 고장인 남원 사투리를 사용한다. 아예 캐스팅 단계부터 배우들의 출신 지역에 따라 ‘변라도(전라도)팀’ ‘변상도(경상도)팀’ 등 두 팀으로 나누어 꾸려졌다.
연출가 이 씨는 영호남 버전으로 만드는 이유에 대해 “지방 사투리가 살아야 우리의 문화가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이 이번 연극을 통해 같은 내용,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사투리에 따라 어떻게 연극의 ‘맛’이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배우들은 “그러려면 관객들은 꼭 이 작품을 두 번 봐야 한다”며 웃으며 입을 모았다.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캐스팅도 2배, 연습시간도 2배, 밥값도 2배다. 하지만 배우나 연출이나 “그냥 재밌으면 됐지, 뭐∼” 하며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연습실 분위기도 자유로워 매일매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본다. 이날도 대본에 딱 두 마디만 나와 있던 기생들의 말다툼이 대본에도 없던 몸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씨는 “연습하는 과정이 꼭 옛 친구들이 모여 벌이는 파티 같다”고 말했다. 9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1만5000∼2만5000원. 02-3673-5580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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