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 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철책에 경악했다.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은 장벽은 이렇게 예고 없이 설치됐다. 1961년 8월 13일. 독일의 분단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연합군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됐다. 수도 베를린 역시 4개국이 분할 점거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독일은 동서로 갈라지게 됐다. 시장경제의 서독과 소비에트식 계획경제의 동독,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동독인들은 서독 사회를 열망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찾아 서독으로 넘어간 동독인들이 1948년부터 10여 년간 300만 명을 육박했다. 하루 1000여 명꼴로 동독을 빠져나간 셈이다.
위기감을 느낀 소련은 동독 정부에 출입 봉쇄를 요구했다. 결국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는 45km의 철책이 만들어졌다. 철조망은 나중에 3.6m 높이에 155km에 이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바뀌었다.
장벽이 들어서면서 동서 베를린 간 이동은 전면 금지됐다. 갈수록 베를린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높아갔다.
1963년 6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냉전의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베를린 장벽은 공산주의 체제 실패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베를린 장벽은 가족을 흩어지게 하고,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이는 역사와 인륜에 대한 모독이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28년간 냉전의 상징이자 분단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에겐 아직도 ‘분단의 장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염원하며 휠체어로 유럽 일주에 나섰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42) 씨의 목적지도 베를린 장벽이다. 이틀 후면 1년 3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최 씨는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끌며 말했다. “광복절인 15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 통일을 기원하고 싶습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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