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먹는 김치 ‘15色 대표 맛’ 겨룬다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02분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고 무더운 날씨에는 입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예부터 떨어진 입맛을 살리는 데는 시원한 김치 국물만 한 것이 없다. 매콤하고 상큼한 맛에 사각사각 씹히는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는 여름철을 이겨 내는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제는 계절마다 지역마다 다르다는 전통 김치의 참맛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니는 식도락가들이 생겨날 정도다. 최근 전통의 김치 맛을 표준화하려는 시도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중간 정도로 익은 혀끝을 자극하는 적당한 매운맛

올 초 한국식품연구원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김치의 매운맛과 숙성도를 연구해 발표했다. 일반인 488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대부분 ‘혀끝을 자극하는 적당히 매운맛’과 ‘중간 정도로 익은’ 김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혀끝을 자극하는 적당한 매운맛’은 고추 성분 가운데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 성분이 0.3∼3.0mg%(김치 100g에 포함된 캅사이신의 양) 들어간 것. 마늘과 생강, 파, 무 등에도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들어 있지만 재료를 다듬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사라진다.

‘중간 정도 숙성된’ 김치는 산성도를 나타내는 pH가 4.5 내외일 때를 뜻한다. 푹 익은 신 김치일수록 pH의 수치는 떨어진다.

실제로 대형 할인마트 등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김치는 이들 수치를 따르고 있다.

농림부는 5월 이를 토대로 맵고 익은 정도에 따라 15단계 등급을 매긴 김치 맛 표준 지표를 개발해 내놨다.

이 지표는 매운맛이 나는 캅사이신 성분 함량을 기준으로 ‘순한-약간 매운-보통 매운-매운-매우 매운맛’으로 나눴다. 또 익은 정도를 나타내는 pH에 따라 ‘미숙성-적당히 숙성-과숙’으로 나눴다. 이들 매운맛 5단계와 숙성도 3단계를 조합하면 15개의 ‘맛 조합’이 나온다.

이 지표가 실용화되면 상품 포장에 ‘순하면서 푹 익은’ ‘매우 맵고 덜 익은’ 등의 표현이 가능해 소비자는 이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맞는 김치를 고를 수 있다.

○ 김치 맛은 지역 맛이 아니라 집안의 손맛

그렇다면 각 지역의 고유한 맛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중부지역의 김치는 오래전부터 짜지도 맵지도 않았다. 젓갈 역시 담백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많이 나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은 예부터 집안마다 고유한 방식의 김치 담그기가 성행했다.

한국식품연구원 구경형 박사팀은 2002년 서울과 부산, 광주 지역의 김치와 전국의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김치를 조사했다.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김치 15종과 전국적으로 맛있다고 알려진 김치 9종,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김치 9종 등 모두 36종이다.

분석 결과 익은 정도를 나타내는 pH에는 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치 맛의 가장 주효한 성분인 캅사이신 함유량 역시 서울과 부산, 광주 김치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 지역 안에서도 숙성도와 매운맛의 정도가 서로 다른 다양한 맛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 또 새우젓과 멸치젓 등 사용되는 젓갈의 종류나 절일 때 쓰이는 소금의 양도 김치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단 색감은 광주 김치가 부산 김치보다 덜 붉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단 하나의 맛으로 대표되는 맛은 없다는 의미다. 즉 ‘지역의 전통’이 아니라 ‘집안의 손맛’에 따라 김치 맛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들어 전국적인 규모로 김치 맛에 변화가 나타났다. 2002년 0.6∼0.8mg%이던 캅사이신 함유량이 5년 만에 2.0∼3.0mg%까지 치솟았다. 구 박사는 “최근 김치의 소비계층이 점점 더 매운맛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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