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그러할까. 심지어 그 따분한 수학마저도? 이 책은 수학으로 지은 소설이다. 수학과 문학의 섞임이라니 참으로 기묘하다. 수학자들은 간결한 수식과 증명의 아름다움에서 신의 질서를 느낀다. 인생이 수학으로 보이는 감동, 그 특이한 기쁨이 이 책의 선물이다.
우선, “신이 주선한 숫자”부터가 별나다. 교통사고로 인생의 기억을 잃은 수학박사는 파출부인 ‘나’의 돌봄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나의 생일은 2월 20일, 박사의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는 284. 숫자 220의 약수(1, 2, … 110 … 220)에서 자기수(220)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더하면 284이고, 284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하면 220이다. 광활한 수의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만난 ‘우애수’처럼 둘의 인연은 숫자의 사슬로 단단해진다.
수학적 이름 짓기도 눈길이 간다. 박사가 나의 아들에게 붙여준 별명은 ‘루트’다. 루트 기호처럼 정수리가 평평해서 얻은 애칭이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관대한 기호.” 루트 머리답게 온갖 숫자를 집어넣으며 수학의 마음을 즐기는 열 살짜리 아들이 사랑스럽다.
정수론이 전공인 박사는 소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이루어진 고집쟁이 수”란다. 2, 3, 5, 7, 11, 13, 17, 19…. 제멋대로 흩어져 있어 어떤 질서로 나타나는지 알기 어렵다. “홀수인 소수들은 외롭지 않을까요?” 질문하는 루트에게 박사는 말한다. 17과 19, 41과 43처럼, 이어지는 홀수가 둘 다 소수인 ‘쌍둥이 소수’가 있음을. 소수의 처지인 박사와 루트의 은유적 관계에서 수학의 낭만성이 느껴진다.
그런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무엇일까. 오일러의 공식(『+1=0)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비율 중 가장 자주 사용되는 숫자인 T(자연로그)와 π(원주율), 보이지 않는 비현실공간을 보게 해 준 복소수 i(―1의 제곱근), ‘없음’을 있게 한 0, 그리고 자연수의 출발점인 1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에 변화를 준 대표 숫자 다섯 가지(T, π, I, 1, 0)가 덧셈과 등호로 연결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인간의 모든 고민이 이 하나에 녹아 있다. 간결한 아름다움! 수학이 되어버린 박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학은 문제 풀이가 아니라 규칙과 패턴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숨은 그림 찾기에 몰두하는 꼬마들처럼 지식 조각들 사이에 숨어 있는 나만의 의미를 읽어 보자. 내 마음에 담긴 지적 소화력, 구술은 바로 ‘사고하는 힘’을 궁금해한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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