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아쉬웠던 것, 다시 산다면 꼭 해 보고 싶은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과연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삶을 산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과거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죽음을 생각해야 되는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애써 피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 무섭기 때문일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삶도 좋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천천히 죽음의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웰빙(well-being)’만큼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가끔 나는 나 자신이 죽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오전이고, 조그만 방 안이고, 크림색 커튼이 쳐져 있을 것이다. 나는 누워 있고, 간호사가 방금 다녀간 것 같다. 많은 이가 왔다 갔고, 분위기는 고즈넉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불러야 할 때라고 직감한다. 아이들은 문 밖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할까’ 하면서 생각을 모은다.
한 인생을 살고서, 두고 가는 자식들에게 긴요하게 당부할 말은 무엇일까. 마지막 말은 너무 길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축적이면서도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듣고 뭉클하여 평생 기억하며 힘들 때마다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명쾌한 결론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짚어진다. 삶의 무대를 내려오는 시점에서 자식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해 여력을 얻은 뒤, 누군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아주 조그마한 훈훈한 일을 하고 가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누구나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 가는 의미이다.”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해야 죽는 순간 헛헛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미소를 띨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이는 아마 동의할 것이다. 진실로 행복한 인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이 세계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젊은 시절에는 이런 평범한 진리가 가슴속에 와 닿지 않았을까. <끝>
이청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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