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시대 휘청거리는 중국인의 사랑▼
◇기다림/하진 지음·김연수 옮김/480쪽·1만2000원·시공사
“매년 여름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어춘에 있는 집으로 갔다.”
‘기다림’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서정적이지만 충격적인. 그리고 이 문장에는 이야기의 거의 전부가 들어 있다.
‘기다림’은 중국 작가 하진(51)을 단숨에 미국 문단의 스타로 떠오르게 한 작품. 하진은 29세에 도미해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기다림’으로 펜포크너상과 전미도서상 등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의 배경은 중국의 문화혁명기이지만 혁명의 상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우유부단한 유부남과 보수적인 아내, 유부남의 애인이 엮어 가는 18년간의 사연이다. 부모의 뜻에 따라 수위와 결혼한 군의관 쿵린. 자신과 부모에게 헌신적인 아내를 싫어하진 않지만, 아내가 촌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긴 민망하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이야기의 끝에는 슬픈 반전이 있다. 담담하고 쓸쓸한 문체로 인해 ‘기다림’은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같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소설이 거대한 상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통을 수위로, 현대사회를 만나로 의인화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쿵린에 투영한 것. 문화혁명의 잔혹한 폭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 소설은 놀랍다. 독자 대부분이 공감할, 사랑으로 인해 가슴을 찢어놓는 상처의 깊이가 바로 혁명이 남긴 상처의 깊이라는 것을 하진은 조용히 일러준다.
▼눈물금지 마을… 여인들은 머리카락으로 울었다▼
◇눈물(전 2권)/쑤퉁 지음·김은신 옮김/336쪽(1권), 288쪽(2권)·각권 9500원·문학동네
‘나, 제왕의 생애’ ‘쌀’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쑤퉁(44)이 맹강녀 설화에 상상력을 덧입혔다. 장편 ‘눈물’의 주인공은 머리카락으로 눈물을 흘리는 여자 ‘비누’다. 진나라 말, 황제 숙부의 억울한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뒤 마을에서 눈물은 금지돼 있다. 그래서 마을 여인들은 신체의 다른 부위로 몰래 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머리카락으로 우느라 비누는 늘 머리가 젖어 있어 쉰내가 나고 빗질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누는 가난해도 성실한 완치량과 결혼해 행복한 날을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만리장성 공사장에 끌려간다.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지은 비누는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남편을 찾아가기로 한다.
쑤퉁의 상상력은 놀랍다. 비누가 가는 온갖 고초의 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다.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인간 시장, 아이들이 사냥감으로 쓰이는 사냥터…. 비누는 눈물탕약을 만드는 관리에게 붙잡혀 억지로 눈물을 흘려야 하고, 악한 아이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팔려가기도 한다. “신화 속에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오늘날 중국이, 또 전 세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알려 준다.
두툼한 책인데도 빠르게 읽힌다. 그러면서 메시지도 묵직하다. 쑤퉁은 소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력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이 얼마나 순수하고 숭고한 것인지를 쑤퉁은 뛰어난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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