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한국인 테너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무대에서 오페라 ‘맥베스’로 데뷔하는 테너 이정원(39) 씨. 그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 유학생이라면 오디션만이라도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라고 말했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은 오디션을 통해 철저히 실력을 검증하는 무대다. 이 씨를 비롯해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2003년 최고의 성악가’로 선정된 소프라노 박은주(42),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극장과 볼로냐 극장 등에서 주역가수를 맡은 소프라노 김성은(44), 독일 아헨극장에서 활약하는 테너 정의근(38), 스페인 아라갈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탈리아 피렌체 극장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한명원(29) 씨 등 유럽 오페라극장의 주역가수들이 다음 달 1일 국내에서 갈라 콘서트를 연다. 27일 오후 이정원, 박은주, 한명원 씨와 만나 유럽 오페라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치열한 생존경쟁=“마에스트로 리카르도 무티가 스칼라에 예술감독으로 있을 땐 동양인을 무대에 세우지 않았어요. 이탈리아 전통극장은 유럽인만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4년 전부터 출연진의 10%는 유럽 외 지역 출신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개방됐어요.”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역으로 52번이나 유럽 무대에 선 테너 이정원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콧대 높은 ‘라 스칼라’의 벽을 뚫었다.
소프라노 박은주 씨는 “요즘 독일의 오페라 극장에는 옛 소련, 동구권 출신 훤칠한 미녀들이 싼 개런티에 출연하겠다며 줄 서 있어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유럽에서 ‘무대 위의 코끼리’는 이제 대접받지 못한다”며 “남녀 모두 뚱뚱한 외모로는 캐스팅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소프라노들도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이전처럼 드레스를 입지 않고 모던한 빨간 재킷을 즐겨 입는다. 또 얼굴과 몸매는 물론 성악가들이 목소리가 변할까 봐 금기시하는 코 성형수술까지 한 성악가도 많다는 것.
▽철저하게 실력만 따져=김성은 씨와 박은주 씨는 부산대 2년 선후배 사이. 김 씨는 1993년 이탈리아 트레비조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의 주역으로 뽑혔고, 박 씨는 1995년 독일 쾰른음대 시절 브레머하펜 극장에 전속가수로 데뷔한 이후 철저히 실력을 바탕으로 유럽무대에 우뚝 섰다. 국내에서는 지방대 출신으로 중앙 무대에 서기란 무척 힘들다. “오디션에서는 콩쿠르나 무대 경력을 볼 뿐 어느 학교, 누구 제자냐고 묻지 않는다.”(한명원) “국내 무대에서 노래할 때면 눈앞에 선생님과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라 부담스럽다. 반면 아는 사람이 없는 유럽무대에서는 마음이 정말 편하다.”(이정원)
▽유럽무대에서 생존하려면=성악가들은 유럽 오페라극장에서 생존비결에 대해 기본적인 노래 실력 외에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에 대한 언어실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또한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힘이 두 번째다. 박 씨는 “오페라는 문화와 역사가 담긴 종합예술”이라며 “유럽에서는 음악회를 마친 뒤 후원자들과 파티를 많이 하는데 정치, 환경, 세계 이슈를 모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연안내▼
9월 1일 오후 7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 지휘 주세페 핀치(라 스칼라 극장 지휘자). 연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만∼5만 원. 1588-789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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