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빈 서판’의 스티븐 핑커, ‘생각의 지도’의 리처드 니스벳…. 이름만 들어도 최신 연구 성과가 궁금해지는 석학들을 한 책에서 만날 수 있다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세계 석학 110명의 ‘위험한 생각들’을 차례로 들려준다.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당대의 가치와 도덕에 위배되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생각들, 과학적으로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세계 과학자와 사상가들이 학문적 성과를 토론하기 위해 만든 모임인 ‘에지(edge)재단’의 회장인 저자가 엮었다. 심리학 생물학 로봇공학 인지과학 경제학 유전학 등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학자들의 ‘위험한’ 주장이 각각 서너 장의 페이지로 펼쳐진다.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의 유전자를 벌하라’라는 도킨스의 주장은 도덕적 관점으로 보면 정말 위험하다.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고 범죄에 이르게 된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따지라는 것인데, 오늘날 형법제도를 부정하는 생각이다. 도킨스는 범죄자를 고장 난 차에 비유해, 이를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자동차를 매질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벌이는 무자비한 진화 과정에 적응해 왔으며 번식에 필수적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수단은 살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우리 공동체의 진화’를 방해하는 대상을 악으로 생각한다는 것.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인을 죽이고 미국 정부가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근거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악이지만 극단주의자 생각에서는 선한 행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간 본성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을 거부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핑커는 인간은 특정 집단에 따라 유전적으로 재능과 기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인종주의와 민족의 우월성을 정당화할 주장으로 거센 반발에 부닥친 생각이다.
이 책을 꿰뚫는 생각은 주류 지식은 도덕적 환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해야 한다’라는 당위 명제가 아니라 ‘…이다’라는 사실 명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설사 비도덕적이라고 도덕적 잣대로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범인(凡人)의 가치와 도덕이 학자들의 주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지, 학자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이 위험한 생각들의 근거를 더 듣고 논박하기엔 학자들에게 주어진 페이지 분량이 적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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