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보이지 않는 손’ 만으론 21세기 경제 못 잡는다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시장이 전통적 경제학 이론과 너무 다르게 움직이는 것에 낙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위로한다. 뉴턴이 들어맞지 않으면 아인슈타인을 불러와야 하듯이 전통 경제학을 대체할 복잡계 경제학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시장이 전통적 경제학 이론과 너무 다르게 움직이는 것에 낙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위로한다. 뉴턴이 들어맞지 않으면 아인슈타인을 불러와야 하듯이 전통 경제학을 대체할 복잡계 경제학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부의 기원/에릭 바인하커 지음·안현실 정성철 옮김/812쪽·2만80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는 경제학이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의 선조는 1776년경 이 섬으로 이주해 왔다. 그들의 손에는 2권의 성경이 쥐어져 있었다. ‘도덕감정론’이란 구약과 ‘국부론’이란 신약이었다.

이들은 이 성경을 쓴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한 일단의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다 1830년대를 전후해 이 섬으로 고전물리학 서적이 흘러든다. 미적분 수학공식과 초기 고전물리학 이론이 소개된 책이었다. 레옹 발라, 윌리엄 제번스, 빌프레도 파레토 같은 이 섬의 사제들은 이 책을 읽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들은 이 수학과 물리학 이론을 도입해 그때까지 철학담론이었던 경제학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수리과학으로 탈바꿈시킨다.

수많은 힘과 에너지가 서로 상쇄돼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하는 균형개념이 도입돼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순간이 일반화된다. 사물을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보편적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세워진다. 그리고 제한된 조건에서 시장거래는 그 이기심이 균형을 이루는 파레토 최적까지 계속된다는 이론이 확립된다.

이 섬에서 앨프리드 마셜, 폴 새뮤얼슨, 케네스 애로 같은 수학 천재들이 이 섬에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물리학을 꿈꾸는 경제학 이론과 법칙이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 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재고창고와 재고관리기술이 이를 반증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과학기술 시장의 경우 지식에 대한 투자가 늘수록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이뤄진다.

무엇보다 경제학 이론이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의 비현실성이 문제였다. 현실적 인간은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정말 단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적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서 정말 머리가 좋은 존재’이다.

이에 대한 불평불만이 커질 무렵 밀턴 프리드먼이란 사제가 나타나 경제학 이론은 예측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합리적이면 과정의 불합리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를 잠재운다. 섬 주민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과학의 반열에 올랐다고 기뻐했다.

이런 신화는 1987년 복잡계 과학을 연구하는 산타페연구소 소속 10명의 세계 최고 과학자가 이 섬에 상륙함으로써 금이 간다. 이들은 이 섬이 한계주의 시대 이후 외부와 단절돼 최신 물리학 생물학 이론을 모른 채 50여 년을 지냈다는 것을 일깨웠다. “50년 넘게 서방세계와 단절되는 바람에 1950년대에 생산된 고물 자동차를 계속 뜯어고쳐 굴리는 쿠바를 보는 것 같다”는 충격적 발언까지 나왔다.

경제학자들은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잘 알려진 열역학 제1법칙에만 근거한 일반균형을 추구하다 보니 ‘닫힌 체계’에 갇혔다. 우주나 생명체는 시스템 내부에 에너지가 증가하면 무질서(엔트로피)를 방출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작용하는 ‘열린 체계’임이 밝혀졌다. 왜 수요공급의 법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지, 왜 가격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일가(一價)원칙이 적용되지 않는지가 뚜렷해졌다. 이기적이면서도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완전합리성의 가정도 비과학적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경제학의 새 패러다임을 제창하고 있는 복잡계 경제학의 선두주자가 집필한 이 책의 내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 저자는 기존 경제학을 ‘자기충족의 학문’ ‘기상학보다도 현실 예측력이 떨어지는 학문’이라고 통탄하며 최신 물리학, 생물학, 컴퓨터 이론을 접목한 복잡계 경제학의 놀라운 설명력을 과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등의 기존 좌우담론은 모두 철 지난 유행가에 불과하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고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학 섬의 원주민에게 인간의 이기심만으로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애덤 스미스의 ‘신약’뿐 아니라 이타심의 중요성을 설파한 ‘구약’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시장이냐 정부냐를 따지는 좌우논쟁은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19세기 환원주의가 아니라 더욱 높은 차원에서 이를 통합해 바라보는 21세기 시스템 사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이념이란 믿음은 시대착오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끊임없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지식이다. 원제 ‘The Origin of Wealth’(2006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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