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느티나무의 선물’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는 자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만화가다. 그는 소박한 두께의 짧은 작품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과 가치, 광속으로 변하는 세상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해 왔다. 작가의 단편모음집인 ‘느티나무의 선물’은 소설가 우쓰미 류이치로의 단편소설을 윤색한 것이다.

표제작의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무라는 전통과 완고함이 누군가에게 전하는 선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대개 고령의 노인이고 상대는 젊은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노인문제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과 화해가 이 단편집의 키워드다.

작은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전원생활을 시작한 하라다 씨 부부. 새로 구입한 전원주택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휘날리는 통에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서 하라다 씨는 자식들의 권유에 따라 느티나무를 자르기로 한다.

이때 옛 주인이 나타나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딸이 집을 팔기 전까지 나무는 옛 주인의 그늘이었고 시계였으며 일기예보였단다. 나뭇잎이 온 동네에 떨어지는 것은 청소할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궤변도 했다. 무엇보다 나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이곳에 살았는데 나뭇잎이 휘날린다고 주인을 쫓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라고 했다.

곧이어 나무를 베러 온 사내는 나무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무는 고집불통 영감처럼 뻣뻣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만을 듣고 그에 반응하면서 살고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면 더 아름다운 새싹을 피워내기 위해, 더 많은 나뭇잎을 떨어뜨린다고 사내는 말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이야기다. 다니구치는 이 흔한 이야기를 통해 고령화 사회의 문제, 아낌없이 줄 수 없게 된 부모 세대의 문제를 제기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다 줘야 했고 자식이 철들 때쯤 고인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인간사의 섭리이고 윤리였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진보가 생명선을 연장해 주면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설정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3대는 당연하고 4, 5대 이상이 동시대에 살게 되었으니 아낌없이 줘버렸다가는 큰코다칠 일이다.

우리 사회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노인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의 윤리적 기준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숙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10여 년 빨리 고령화 사회를 살아온 일본 작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느티나무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여러 세대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지혜를 찾아보자.

박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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