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 알알이 초가을 스미고 조선 포도화 묵향 선비를 깨운다

  • 입력 2007년 9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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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가 모습을 감추는 계절. 초가을에 만나는 포도 그림은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매력적이다.

포도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들이 즐겨 그린 대상이다. 포도 그림이 여럿 전해 오지만 그중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작품은 종이나 비단에 그린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도자기에 그린 것이다.

바로 국보 107호인 백자철화 포도무늬 큰항아리(18세기 전반·이화여대 박물관)다. 항아리 모양도 매력적이지만 표면에 그려 넣은 포도 그림은 순수 회화 작품을 능가하는 품격을 자랑한다. 포도송이는 싱그럽고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포도나무 잎의 적절한 농담(濃淡·진하고 연함)과 생생하면서도 섬세하게 이어진 줄기를 보면 빼어난 포도 그림임을 실감케 한다. 화면 구성과 여백 처리도 뛰어나다. 위쪽 부분에서 몸체의 상반부까지만 포도나무를 그려 넣고 하반부를 완전히 비워 놓아 여백을 시원하게 살렸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명품이다.

때마침 의재 허백련의 손자인 21세기 문인화가 허달재 씨의 포도 그림이 제주 서귀포시 ‘박여숙화랑 제주’에서 선보인다. 먹을 연하게 구사한 담묵(淡墨)에, 그 필치가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먹색 갈색 초록색이 잎사귀 줄기 포도송이마다 잔잔한 변화로 가득하다. 미세한 색의 변화가 은근한 생동감을 부여하면서 담백한 수묵 포도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여유가 있다면 서울 이화여대 박물관을 찾아 백자철화 포도무늬 큰항아리와 비교해 보면서 우리 전통 수묵 포도화의 세계에 푹 빠져 보면 좋을 듯하다. 전시는 10월 28일까지. 064-792-7393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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