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 하루 그 가정의 ‘전쟁과 평화’… ‘토요일’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 토요일/이언 매큐언 지음·이민아 옮김/480쪽·1만3000원·문학동네

‘토요일’은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새벽에 시작된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세계적으로 벌어진 날이다. 거리의 시위 군중을 보면서 헨리 퍼론은 생각한다. “이 전쟁에 반대해야만 하는가?” 이 장면은 기이하다. 왜냐하면 퍼론이 서 있는 집 안은 지극히 안온한 곳이며, 집 밖은 지독히 혼란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대 서구문학의 지성으로 꼽히는 이언 매큐언(59). 발표하는 작품마다 관심을 모은 작가답게 2005년작 장편 ‘토요일’도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출간된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작품’(뉴욕타임스)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요일 단 하루에 한 가정에 일어난 일을 묘사한 이 소설은 오늘 현대인이 어떤 악몽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대단히 탁월하게 고발하기 때문이다.

재능을 갖췄고 외모도 출중하며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아는 48세 신경외과 전문의 헨리 퍼론. 뛰어난 변호사인 아내 로설린드, 필명을 날리는 시인인 딸 데이지와 천재 재즈 기타리스트 아들 테오와 더불어 그의 가정은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작가는 이 런던 상류층 가족이 폭력으로 무너지는 하루를 펼쳐 보인다. 오전에 퍼론과 교통사고를 냈던 건달 박스터가 저녁 때 퍼론의 집에 쳐들어올 때, 안온하던 가정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현재형의 차가운 문체는 긴박하다기보다 사변적이지만, 그럼으로써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도드라진다.

면도를 하고 오줌을 누고 섹스를 하는 토요일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그 사이사이에 ‘후세인’ ‘알카에다’ ‘전쟁’ ‘학살’ ‘테러’ 같은 폭력의 이미지를 포개 놓는다. 가디언지의 평대로 “평범한 일상의 삶을 이루는 세세한 요소들이 어떻게 해서 전 지구적인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작가의 집요함이 돋보인다”. 그래서 퍼론이 박스터를 용서하기로 하는 마지막 부분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완벽한 주인공의 ‘완벽한’ 결말 또한 작가의 정교한 의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절실함이 없는 화해는 거꾸로 계속되는 세계의 폭력을 암시한다는 것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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