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국정을 국민, 공직사회, 지식사회 그리고 세계에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알린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국내 언론 대상의 갖가지 취재제한 조치에 급급한 것과는 달리 미국 일본의 경우 ‘국정홍보’란 대외적인 국가 홍보를 뜻하며 국내 언론을 상대로 한 정책 홍보는 실무자 차원의 적극적인 언론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국정홍보처가 모델로 삼고 있다는 유럽식 정부 홍보 시스템도 본고장에선 각 행정 부서의 언론 접촉을 장려한다는 적극적 대(對)언론 관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미국, 정부 홍보는 부처별로=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언론에 특히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백악관 관리들은 비공개 석상에서 “언론이 대통령의 실수만 찾아다니고, 이라크전쟁 같은 국가적 과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측면만 전달한다”며 불평을 터뜨리곤 한다.
지난해까지도 행정부 내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미국 언론의 좌편향이 문제”라며 언론을 비난하곤 했다. 메이저 언론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불만은 네오콘 기관지 격인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가 한때 백악관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으로 대우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일은 부시 행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주요 신문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아예 한동안 지방 신문의 인터뷰에만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언론 정책 및 대국민 정책 홍보를 총괄하는 독립 부서를 설립한다는 것은 미국에선 상상도 하기 힘들다.
자국민 및 국내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홍보는 부처별 대변인실을 중심으로 보도자료 제공, 장관 연설문 및 동영상 공개, 법령 및 정책방안 공개가 진행된다.
국가 차원의 홍보 기능은 99% 해외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국무부(한국의 외교통상부) 차관급이 책임자다. 홍보의 내용은 정권의 업적 소개가 아니라 미국의 실체를 해외에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등 미국적 가치는 물론 디즈니, 프로야구, 할리우드 등 문화상품을 앞세운다.
현재 미국의 국가 홍보를 책임진 캐런 휴스 국무부 국가홍보 담당 차관은 해외 출장이 잦다. 올해 들어 인도(3월) 중동(7월) 남미 및 중동(8월)을 돌았다. 미국의 친선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미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는 빈곤 및 질병 퇴치 현장을 방문해 ‘미국이 이렇게 애쓴다’는 메시지를 곳곳에 전했다. 텍사스 주의 이슬람단체, 뉴욕의 유대인 단체 등 국내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이때도 메시지는 미국과 타 문화권의 동화(同和) 노력에 맞춰진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보는 세계의 눈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이라크전쟁을 치르면서 굳어진 ‘오만하고 일방적’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이미지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그 때문에 대외 홍보작업은 행정부 내에서는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의 하나로 간주된다.
부시 1기 행정부에서는 매디슨 애버뉴(뉴욕 맨해튼 내 광고업계가 모여 있는 거리)의 고수인 샬럿 비어스 오길비&매더 회장을 홍보담당 차관으로 영입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민간은 더 잘할 수 있다”는 부시 철학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그는 2년 만에 하차했다. 파격적 광고 아이디어로 P&G 생활용품의 브랜딩에 성공했지만, 중동과 남미의 반미주의 벽은 넘지 못한 것.
후임으로는 직업외교관 출신 마거릿 터트윌러를 영입했으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의 포로학대 사진이 공개되면서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일본 대외홍보, 지도자가 까먹어=일본에서도 ‘국가 홍보’라면 국내용이 아니고 대외 홍보를 가리키는 게 상식이다. 대외 홍보 역시 담당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외무성 관방 산하의 한 부서인 홍보문화교류부가 맡고 있다. 한국처럼 ‘언론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부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향상을 위해 근래 몇 년간 가장 노력을 기울인 대목은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그러나 ‘세계 2위의 유엔분담금을 내는 국가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 달라’는 일본의 요구는 별다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부개발원조금(ODA) 지원은 국가 이미지 향상에서 한발 나아가 자원(資源) 외교로 연결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들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 삭감을 결의한 교토(京都)의정서 체결 주도국으로서 환경 분야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이 취임한 후 지난해부터는 홍보 수단에 새로운 아이템이 추가됐다. 만화를 비롯한 ‘문화외교’에 눈길을 돌린 것. 외무성은 5월 ‘일본 팝 문화의 발신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이른바 ‘만화의 노벨상’이라는 ‘국제만화상’을 신설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준비위원회에서는 원자폭탄 피해를 그린 일본 만화 ‘맨발의 겐’ 영어판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들은 종종 정치인의 실언 한 방에 물거품이 된다. 아베 총리가 3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해 세계 여론의 포화를 맞자 한 외무성 관계자는 “몇 년간 기울였던 이미지 향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탄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총리가 개헌 의지를 다지며 평화헌법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평화국가 일본’이라는 홍보 전략을 무색하게 한다. 홍보실이 잘하려 해도 그룹 총수가 가벼운 언동을 하고 그릇된 정책 판단을 해 나간다면 회사 이미지가 절대 향상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럽, 한국의 ‘모델’? 실체는 딴판=프랑스나 독일에도 한국의 국정홍보처와 비슷한 기관이 있다. 프랑스 총리실 산하의 정부정보실(SIG)과 독일 연방홍보처(Bundespresseamt)가 그런 곳이다.
이들의 업무는 한국 국정홍보처와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뭇 상반된다. 프랑스 SIG의 주요 업무는 기자들에게 취재 자료를 제공하고 언론 보도를 정리해 각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독일 연방홍보처는 연방기자회견센터에서 1주일 3번 열리는 정부 내각의 합동 기자회견을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나 독일은 정부가 앞서 현장에서의 언론 접촉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처럼 담당 국실장이 부처 기자실에서 장관 대신 나와서 브리핑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장관이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한다. 사실상 장관이 거의 매일 기자 앞에 등장하는 것.
나아가 프랑스나 독일의 정부 부처는 유력 언론을 대상으로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하는 게 관례다. 물론 이런 브리핑은 ‘오프 더 레코드’의 형식을 취해 기자들이 그대로 쓸 수는 없지만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오보를 막는 데 기여한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담당하는 공보관들 역시 한국과는 달리 장관의 최측근으로서 부처 현안을 꿰고 있는 실세다.
한편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국가이미지 홍보를 담당하는 기관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유럽 국가들은 대개 외교부가 앞장서 대외차관, 비정부기구(NGO) 지원, 국비장학생 같은 인도적 대외 지원 사업을 실시하며 국가 이미지를 관리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