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새벽 예불에 세상은 잠을 깨고…

  • 입력 2007년 9월 13일 03시 02분


《오전 4시. 봉은사의 새벽은 소리가 주인이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과 현대아이파크, 경기고에 둘러싸인 서울 강남의 ‘도심 속 산사’에 목탁소리가 초가을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딱∼딱∼딱∼딱∼’ 절간 스님들의 잠을 깨우는 도량석(道場釋)이다.

오늘 도량석 당번은 혜봉 스님. 오전 3시 40분에 일어나 목탁을 들고 경내를 돈다. 일체중생의 혼미한 정신을 깨우는 목탁소리가 청아하다.》

이어 다듬이질 박자를 연상케 하는 법고(法鼓) 소리. ‘둥둥덩덩∼둥둥덩덩’ 대북을 두드리는 건 젊은 스님만이 아니다. 법고에 선명히 각인된 그림자가 함께 춤을 춘다. 스님과 그림자, 실체와 현상, 참나(眞我)와 껍데기인 나의 구분이 없다. 우주 삼라만상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범종소리는 일파만파로 사바세계에 울려 퍼진다. 서방정토의 도래와 지옥세계에 허우적대는 중생의 구제를 염원하며…. 법고와 범종, 목어(木魚)와 운판(雲版)은 각각 짐승, 인간, 물고기, 새의 구원을 상징하는 ‘사물(四物)’이다.

오전 4시 반. 예불 시간이 다가오면서 보살님들의 발소리가 급하다. ‘사각∼사각∼사각.’ 아직 쓸지 않은 대웅전 흙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다. 화강석 계단을 오를 땐 소리도 바뀐다. ‘또각∼또각∼또각.’

대웅전의 경쇠소리가 울리면 범종루, 지장전, 영산전, 미륵전 등에서 일제히 예불이 시작된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대해 예를 올리는 예경을 끝내고, ‘정구업 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천수경 독송 소리가 일주문 밖 6차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밀어낸다.

그러나 소음은 쉽게 밀리지 않는다. 밀리는 듯 멀어지다 ‘부르릉∼’ 오토바이 굉음소리, ‘끼이익∼’ 승용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쿵텅∼쿵텅∼쿵텅’ 새벽길에 황급히 뒤뚱뒤뚱 내달리는 중장비 행차 소리가 끊임없이 독송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역습이다. 소리의 싸움이다. 마치 성(聖)과 속(俗)이 주도권을 놓고 다투듯, 나와 나 아닌 내가 나를 두고 다투듯. 그러나 어디 소리가 이뿐이랴. 가만히 눈을 감으면 찌르레기, 귀뚜라미 벌레들의 합창이 평화롭다. 그 미물들의 소리가 세상 구분과 경계와 이분(二分)을 무너뜨리고 모든 소리를 감싸안는다.

오전 6시. 예불이 끝나고 스님들의 발우공양 시간. 대웅전 오른쪽 선불당(選佛堂)에 나란히 앉은 스님들이 별식을 공양하느라 바쁘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 떡국에 배추김치, 물김치, 호박볶음이 놓였다. ‘꾸울꺽’ 스님들의 목울대 넘어가는 소리, ‘후루룩∼’ 국물 들이켜는 소리.

봉은사는 오랫동안 조계종 내부 분규를 겪어오면서 새벽예불이 유명무실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명진 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뒤 사찰 밖 출입을 스스로 금한 ‘1000일 기도’에 돌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300여 명의 신도가 매일 새벽 대웅전 법당을 가득 메운다.

1993년부터 14년째 봉은사 새벽예불에 참석해온 김무웅(66) 씨는 “전에는 스님들이 새벽 예불에 안 나와서 내가 스님들 방에 박차고 들어가 ‘새벽 예불 안 나오는 스님 이름을 일주문에 붙이겠다’고 협박도 했지요. 내가 스님들 군기반장이었지.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 스님들 볼 일이 없어요”라며 웃었다.

봉은사의 새벽엔 별이 없다. 마천루가 내뿜는 휘황한 불빛이 하늘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심 산사엔 소리가 있다. 해가 뜨면 사라지는, 부산한 낮이면 결코 잡아낼 수 없는 마음과 소리와 삶의 조합이 오롯이 담겨 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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