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조창환 ‘포옹’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7분


포 옹 - 조 창 환

저녁마다 만 마리도 넘는 새들이 날아와

까맣게 하늘을 뒤덮고 서로 몸 부비다가

와아와아 얼음 풀리는 소리 울리며

저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속으로

깃을 내린다

나무가 휘청이도록 새를 끌어안으며

밤 깊도록 제 안의 강물 품어 올려

그 체온으로 덥히는 보금자리

곁에 펼쳐진 풀밭, 맨발로 밟으며

나는 힘찬 잠 속으로 들어간다

나무가 휘청이도록 새를 끌어안는

아찔한 꿈속으로

- 시집 '수도원 가는 길'(문학과지성사) 중에서

젖은 깃을 털며 아침 새들이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나무의 포옹 때문이었구나. 다시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천 개의 팔뚝 때문이었구나. 만 장의 잎새와 만 개의 열매를 매달고도 군말 없이 만 마리 새를 거두었구나. 그러나 만 마리의 새를 위해 나무 홀로 버티었다고는 하지 말자. 저 나무, 만 개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새들도 나무를 껴안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엄마를 번쩍 들어 올리듯. 세상 험하다지만 서로가 서로를 포옹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안심하고 잠들 수 있으리.

시인 반 칠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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