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 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시댁으로 가야 하는 한가위.
올해는 추석 연휴가 길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는 회사 일 때문에 늦게 간다는 핑계를 대기가 힘들어졌다. 끙~.
한 해의 풍요로운 수확을 축하하고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데 의의가 있다는 한가위. 가족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행복할까. 결혼을 해서 새 가족이 된 이들에게는 숙제 같은 추석이다.
오랜만에 만나면 피붙이 간에도 어색한 순간이 흐른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정말 속속들이 마음까지 통할까. ‘길어야 5일’이라며 억지웃음을 짓는 추석이지는 않았나.
추석에도 처세는 필요하다. 시어머니가 여우같은 며느리와 화합하는 데도, 곰 같은 남편이 아내와 화목한 시간을 갖는 인간관계의 원리는 틀림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여기 ‘내 얘기 같은’ 이웃의 추석 풍경이 있다. 익명을 조건으로 그들은 ‘처세’ 또는 가족관계의 ‘기술(art)’이 필요한 상황을 털어놨다. 사랑의 가정연구소 ‘하이패밀리’ 송길원 대표, 건국대 의대 정신과 하지현 교수, 여성심리연구기업 ‘더블유 인사이트’의 김미경 대표 등 전문가 3인은 화목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을 귀띔했다.
나와 내 가족은 어디쯤 있을까.》
○ 시어머니의 공치사라도 듣고 싶은 며느리
추석만 되면 친지들이 30∼40명 시댁으로 모여든다. 당연히 설거지 통 앞을 떠나기 힘들 정도로 일이 많다.
아침상과 점심상을 차리는 일은 여자 친지들이 많이 돕는 편이다. 그런데 남자 친지들은 당연하다는 듯 TV만 보거나 술상만 받는다. 그런 풍경 속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이건 불공평하다’는 반발심이 생긴다.
‘연장자는 그렇다 치고 젊은 남자들은 함께 일하면 가족 분위기도 더 화목해지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부엌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신 분이다. 젊은 친지들 중에는 일을 돕고 싶어도 시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친지들 앞에서 혼자만 튀는 것 같아 주저한다. 이런 때 어른이신 시어머니가 젊은 남자들도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끌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며느리가 하는 일이 마음에 찰 리 없겠지만, 목에 땀띠가 날 정도로 추석 내내 설거지를 많이 한 며느리에게 ‘그래, 아가. 네가 수고했다’라고 공치사라도 한마디 해 주시면 안 될까. 다른 친지들은 그런 말을 해도 시어머니는 결코 그런 말씀이 없으시다.(결혼 5년차 30대 며느리)
☞도움말=칭찬을 속으로 하는 것이 어머니의 성격일 수도 있다. 공치사를 기다리지 말고 “어머니. 제가 잘했지요?”라고 먼저 여쭤라. ‘칭찬 타임’을 마련해서 명절 폐회식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보라.(송길원)
만약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엄한 분이셨다면 ‘엄한 시어머니’가 탄생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공격자와 동일시’ 현상이라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당신의 시어머니 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본인의 ‘현재’를 조금씩 깨닫도록 할 수 있다.(하지현)
살아온 습관 때문에 시어머니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바뀌기 쉬운 남편의 도움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명하다.(김미경)
○ 늦게 오는 며느리 때문에 불편한 시어머니
“빨리 좀 내려오지 그러느냐”는 말은 아들한테만 한다. 며느리가 자리 비운 시간을 골라서….
몸은 늦게 오더라도 차례 비용이라도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 예산이 넉넉하면 마음 편히 제수용품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찾아온 친지들에게 싸 줄 음식도 넉넉하게 마련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돈이라도 미리 넉넉하게 부쳐 줬으면 하는 마음을 며느리들은 알까.
며느리가 내려와도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마음 놓고 말하기도 힘들다. 이럴 때 “어머니, 어머니, 이거 할까요?” 라고 물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그럴래?” 하면서 응수해 줄 텐데…. 사실 말로만 “어머니, 어머니” 자주 불러 주어도 내가 시어머니로서 인정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은데.(경기 여주군에 사는 60대 시어머니)
☞도움말=협상 파트너를 아들이 아닌 며느리로 바꿔라. 어른이 의논할 때 거절할 며느리는 없다. 해야 할 일은 정확하게 알려 줘라. 말하기 힘든 소망은 쪽지를 활용하면 의사 전달하기가 한결 쉽다.(송)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기 전에는 시어머니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때가 있다.(하)
며느리의 사회생활 때문에 아들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사람을 쓸 수 있도록 해 드리거나 쇼핑의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는 것이 옳다.(김)
○ 일손 돕지 않는 남편이 미운 아내
우리 부부는 명절이 두렵다. 명절을 앞두거나 시골에 다녀온 뒤에는 늘 다툰다. 매년 같은 주제로….
남편은 평소 집안일을 잘 도와 주는 편이다. 40대 초반이지만 동년배 남자들과는 달리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
하지만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기만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아, 미쳐! 모든 집안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이럴 때 잘 도와 주면 평생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살 텐데 오히려 평소보다 잘 못해서 구박을 하게 한다. 왜 그럴까.
남편의 변명.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부모님 뵙고 친척들, 손님 상대를 하다 보면 일을 할 시간이 없다.”
명절이 다가오면 그래서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집안일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힘들 때는 도와 달라고 하소연해도 말할 때뿐이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게”라고 한 남편이 시골에 가서 배신을 때린 게 어디 한두 번이랴.
올해도 추석이 다가오니 두렵다. 또다시 같은 주제로 같은 싸움을 반복할까봐. 남편은 정말 내 생각을 하긴 하는 걸까.(결혼 9년차 아내)
☞도움말=평소에 남편이 도와 줄 때 아낌없이 칭찬하라. 남편은 도와 줄 기회를 만들지 못했거나 가족 문화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수 있다. 가족의 문화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공개적인 ‘임무교대식’ 같은 것을 제안해 보라. 남편이 미리 도울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해 가는 방법도 있다.(송)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며칠만이라도 독점하게 놔드리는 효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하)
남자는 무리 속에서 공처가로 찍히는 것을 은연중에 두려워하는 존재다. 귀엽게 봐 준다고 생각하고 집에 와서 도움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명하다.(김)
○ 아내와 시부모의 화합을 바라는 남편
과장을 좀 하면 이런 시댁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다. 시댁행이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아내도 이건 인정한다. 그런데도 명절 때 시댁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인 모양이다. 머리는 따라 주는데 몸은 도망간단다. 그런 아내가 얄밉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간다.
올해엔 불쑥 아내가 “이번 추석은 5일 연휴이니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이나 다녀 오자”고 제안했다. 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마누라 속내야 이해하지만 아직 명절 때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우리 부모님이 개방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어찌 우리 식구만 갈 수 있겠는가? 형님네는 또 어쩌고….
말수가 적은 아내는 결혼 7년이 넘었지만 시댁에 가면 소처럼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 나의 바람은 단 하나. 시집이 친정처럼 편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어울려 줬으면….(결혼 7년차 30대 남편)
☞도움말=아내의 제안에는 고마움을 표하라. 어머니의 사진, 아내의 사진 같은 것을 통해 관계와 대화의 접촉점을 만들라.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 어머니와 아내를 위한 시간을 만들라. 어머니가 아내에게, 아내가 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 또는 동영상을 만들어 보라.(송)
사람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현실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당신 아내는 다른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
남편은 끼어들지 않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찜질방에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등의 방식으로 둘만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김)
○ 윗동서 얄미운 아랫동서
비슷한 나이대의 윗동서가 있다. 하지만 전혀 손위답지도, 동서답지도 않다.
윗동서는 시부모를 전혀 봉양하려 하지 않았다. 두 돌된 아이가 있지만 시부모님이 손자를 안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동서가 아이를 친정에 맡겨 기르기 때문이다.
동서 성격이 시부모님께 살가운 것도 아니고 아이도 사돈집에 자주 가 있어 그런지 시부모님은 상경하시면 동서네가 아닌 우리 집으로 온다.
이제 돌이 된 우리 아이가 태어난 뒤부터는 시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을 더 당연하게 여기신다. 그나마 손자를 마음껏 안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석 차례를 동서네에서 지내기로 한 해에도 상경하신 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주무셨다. 동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빈말이나마 “어머니, 주무시고 가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뿐 아니다. 명절날 동서는 점심을 먹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찾아뵐 친정이 없다. 그 대신 큰댁으로라도 인사를 가고 싶지만 시어머니는 “큰댁에는 자주 가지 말라”고 아예 못을 박으셨다. 아, 얄미운 윗동서.(결혼 4년차 아랫동서)
☞도움말=명절 전 일대일 면담을 신청하라. 윗동서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라. “요즘 많이 지치네요. 형님이 곁에 계시면 훨씬 든든하고 힘이 날 것 같아요”라며 SOS 요청을 하라.(송)
윗동서도 어디선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해의 폭을 넓히자.(하)
아이는 양쪽 집안과 교류를 하는 것이 정서 발달에 이롭다. 이런 점에서 본인이 훨씬 올바른 태도를 갖췄다고 자부하라. 동서의 성격은 바뀌기 힘들 것이다.(김)
○ 장모의 이해가 필요한 사위
며느리만 추석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사위도 결코 편하지 않다. 특히 육아의 일정 부분을 장모님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치 보는 것 못지않게 사위도 장모님의 심기를 살피게 된다.
고향이 전남 목포여서 추석 당일을 본가에서 쇠고 다음 날 서울 처가로 간다. 하지만 처가에 도착하면 반기는 기색보다는 ‘왜 이제야 왔느냐’는 표정이 역력하시다.
옆집은 추석이라고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로 북적대는데 우리 집은 하루 종일 적막강산이었다는 게 장모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처가에 그렇게 늦게 가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석 다음 날이긴 하지만 주로 오전에 도착한다. 차 막히는 추석 연휴 때 목포에서 출발해 오전 중에 서울에 도착하려면 본가에서 몇 시에 나서야 하는지 알고나 계시는 걸까.
장모의 불만은 ‘왜 추석 당일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명절 다음 날에는 처남 부부가 처가로 가기 때문에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명절 당일 저녁은 우리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2남 1녀인 우리 가족은 서울과 대전, 광주에 각각 흩어져 살기 때문에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이라고는 1년에 4차례, 명절과 부모님 생신 때뿐이다.(결혼 5년차 30대 사위)
☞도움말=그만큼 사위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라. 오해는 잘 몰라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통량과 상황에 대해서 설명 드려라. 추석이 단 하루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 가족의 추석을 별도로 만들어 보라.(송)
억지로 한 번은 장모님 뜻에 맞춰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 원성을 듣게 된다. 같이 모이기를 원한다면 추석 지나서 별도로 모이자고 사위가 제안하면 어떨까.(하)
진보적인 대안이 있다. 1자녀 가정이 늘어나는 만큼 두 번의 명절 중 추석 때는 시댁에 가고 설 때는 처가에 가는 방안을 실천할 때도 됐다.(김)
○사위의 ‘싹싹함’이 아쉬운 장인
결혼한 지 4년 된 사위가 둘 있다. 추석 때 처가를 찾아와서는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의를 갖춰 어른을 대하는 태도는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좀 더 친근했으면 한다.
그래서 사위가 왔을 때 일부러 말을 많이 거는 편이다. 정치나 경제 동향을 묻기도 하고 스포츠나 연예인 얘기로 운을 떼기도 한다.
다행히 둘째 사위는 싹싹한 편이라 응수를 잘해 주는 편이지만 큰사위는 통 말이 없다. 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사위들과 술도 한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장인이 어려운지 좀체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가족끼리 고스톱을 칠 때도 큰사위는 아이를 안고 돌보면서 게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같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 달에 1번 이상은 함께 식사를 하지만 좀체 다가서기 힘들다.
어른인 내가 더 편한 모습을 보이고 마음을 열어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 좀 더 친근해지는 방법은 없을까.(4년차 사위 둘을 두고 있는 60대 장인)
☞도움말=사위에게 윙크를 시도해 보라. 가끔은 격식을 따지지 말고 망가져 보라. 노래방 같은 곳에 가서 분위기를 최대한 맞춰 주는 것도 좋다.(송)
사위와 정말로 친해지고 싶다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딸에게 물어보라. 취미나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으로 대화의 주제를 삼으라.(하)
사위와 장인 공통의 문제다. 윷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통해 재미있고 즐거운 명절을 만들라.(김)
○시골집 가지 못해 불편한 이혼남
30대 후반인 나는 추석 같은 명절만 되면 괴롭다.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 2년 전에 이혼을 했다.
평소에도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만 추석 같은 명절 때는 정말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고 있다. 추석이라고 함께 모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부산 집에 가기도 쉽지 않은 노릇. 명절이면 당연히 부모님을 찾아뵙고 안부를 여쭤야하지만 내가 가면 다른 친지들이 불편해 할까봐 걱정이다. 함께 고향 집을 찾을 아내나 남편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까.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 하나. 고향의 가족들에게 ‘재혼할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래도 불효를 하고 있다는 부담감은 떨치기 힘들다.
올해 추석에는 30대 이상 싱글 남녀가 모이는 비공개 ‘솔로 클럽’ 회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추석 당일에도 데이트를 할 계획이다. 재혼을 빨리 해야 할 것 같다.(이혼 2년차 30대 남성)
☞도움말=‘시간을 달라’고 공개 선언할 정도의 용기가 있다면 건강한 것이다. 제2, 제3의 고향을 만들어서 여행을 해 보라. 자녀가 명절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송)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본인이 당당하고 편히 지내면 친척들도 불편하지 않게 대할 것이다.(하)
시간을 두기로 한 점은 매우 현명하다. 부모님이 서운해할 수 있으니 명절 전에 다녀오는 배려를 하면 더욱 좋다.(김)
○친척들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미혼녀
가족이나 친지들이 ‘백조’인 나에게 더 잘해 주려고 신경쓰는 것도 부담스럽다. 몇 년 전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나를 구원해 줄 핑곗거리를 찾았다.
“추석 후에 바로 공무원시험 모의고사가 있어요.” 이 핑계로 고향 집에 가지 않고 추석을 혼자 보낼 수 있게 됐다. 작년에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2, 3명을 불러 송편과 부침개를 직접 해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등 좀 더 활동적으로 보내고 나니 추석 후 허무감은 좀 줄어든 편.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인터넷 솔로 여행 카페 ‘나홀로 여행가기’에 가입해 5명이 2박 3일로 정동진 기차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아마도 명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국토 순례 여행’을 떠나게 될 것 같다.(서울에 사는 미취업 20대 여성)
☞도움말=나만의 추석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자기 계발 또는 휴식 시간으로 삼아 보라. 관계의 빈 곳을 채우라. 질문하는 친척에게는 응원해 달라고 요청하라.(송)
친척들은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한다.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응대하면 된다.(하)
부모님을 미리 찾아뵈어라. 그리고 지금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현명해 보인다.(김)
○관계가 어색한 사촌
20대의 대기업 신입사원이다. 동갑내기 사촌과 한 살 어린 사촌동생, 이렇게 셋이서 어릴 적부터 추석 때만 되면 즐겁게 지냈다. 그런데 혼자서만 소위 일류대에 진학하고 취업도 번듯한 곳에 하면서 사이가 미묘해졌다. 사촌들은 아직도 미취업 상태다.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사촌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친지들이 대학 시절부터 대놓고 비교를 하면서 사촌 간에 틈이 벌어졌다.
이제는 사촌들이 “우리랑은 계급이 다르니까” 등 비아냥거리는 말을 할 정도다. 좀 우스운 상황이긴 하지만 2년째 계속 이런 상황이 계속돼 지금은 사촌들을 피하게 된다.
이번 추석에는 사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출장 핑계를 대고 호텔 패키지로 제주도나 부산에서 혼자 쉬고 올 계획을 세웠다.(서울에 사는 입사 3년차 대기업 회사원)
이럴 때 베푸는 것이다. 호텔 패키지를 가지 말고 사촌들에게 좋은 음식이나 술을 사라. 대접이 달라질 것이다.(하)
가족들의 비교가 이런 사태를 낳았을 것이다. 명절 때 조심해야 하는 언행 중 하나다. 사회에서 남에게 하는 배려를 사촌들에게도 한다면 좋은 관계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김)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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