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9월 17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당시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은 제46차 유엔총회 개막식에서 연단에 올라 이같이 말했다.
북한의 정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냉전 시절 ‘북괴(北傀)’로 통용됐던 북한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유엔의 활동에 적극 합류해 나갈 우리 공화국 정부의 확고한 의사를 다시 표명하는 바이다.”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의 연설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159개 유엔 회원국 대표들은 박수로 두 사람의 연설에 화답했다.
남한과 북한의 유엔 가입안이 통과된 것은 이날 오후 3시 25분. 당시 총회 의장이 “가입안이 이미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됐고 120여 개 회원국들로부터 지지 서명을 받았다”고 설명하자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로써 북한은 160번째, 남한은 161번째 유엔 회원국이 됐다. 남북한 동시 가입안이 통과되자 총회의장 왼쪽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던 남북한 대표들은 회원석으로 옮겨앉았다. 또 유엔본부 앞 회원국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나란히 올려졌다.
이날부터 남북한은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됐다. 전후(戰後) 40여 년간 지루하게 계속됐던 정통성 싸움도 일단 국제적으로는 의미가 옅어졌다. 유엔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에서 ‘선거가 가능한 지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으나 이날부터 2개 국가가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
그래서인지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이라는 기대와 함께 ‘2개 국가가 된 이상 통일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이 남북한 관계는 물론 한국의 외교사에도 역사적 순간이 된 것은 분명했다. 당시 노창희 유엔대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기석에서 회원석까지는 불과 몇 m밖에 안 되는데 그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43년이 걸렸다. 남의 힘에 의해 해방되고, 또 분단되고…. 근대국가가 되고 난 뒤 100여 년간 한 번도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지 못했던 설움을 남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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