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회탈, 터키의 밤 밝히다…서울발레시어터, 앙카라서 첫 공연

  • 입력 2007년 9월 20일 03시 00분


‘터키의 초승달 밤이 한국 탈(mask)에 흠뻑 젖다.’

18일 터키의 수도 앙카라는 분명 그랬다. 오페라 하우스의 680여 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낯선 안개처럼 몽환의 읊조림이 가득했다. 잠깐의 정적을 떨치는 박수가 밀려 왔다. 커튼콜을 외치는 환호. 90분의 아련한 꿈이 눈을 뜨고 비상했다.

7년 만의 장정. 2000년 모나코 공연 이후 처음으로 해외 공연 길에 오른 서울발레시어터(SBT)의 무대는 터키에 순조롭게 닻을 내렸다. 18∼28일 이스라엘과 세르비아로 이어지는 3개국 순회공연의 항해에 맑은 바람이 불고 있는 셈.

이번 공연은 수교 50주년을 맞아 문화관광부에서 후원하는 한국과 터키의 2007년 ‘우정의 해’ 기념 초대행사 중 하나다. 14, 15일 트러스트무용단의 ‘솟나기’와 SBT의 ‘생명의 선’이 앙카라에 선을 보였다. 국립무용단의 ‘코리아판타지’ 등은 다음 달 이스탄불에서 선을 보인다. SBT의 이후 일정은 터키 공연 소식을 들은 각국 한국대사관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낮 동안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임에도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에르트룰 귀나이 터키 문화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와 중국, 인도 대사 등도 관람했다. 터키 국영방송국 등 많은 현지 언론도 몰렸다. ‘1×1=?’ ‘춤을 위한 탱고’ 등 4개 소품으로 구성된 1부가 끝난 휴식시간. “감각적이고 화려했다”는 칭찬이 많았다. 특히 각설이타령을 소재로 한 ‘희망’과 2001년 미국 네바다발레단에 수출했던 ‘생명의 선’을 본 관객들은 “독특한 신비로움”을 매력으로 꼽았다.

열기는 2부에도 이어졌다. “한국의 탈춤과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마스크’(사진)가 45분간 펼쳐졌다. 마스크는 다음 달 1∼6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선보일 SBT의 야심작. 말 그대로 터키 무대가 ‘세계 초연’이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과 국악이 깔린 마스크는 ‘한국적 모던 발레’로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사립문과 청사초롱 등 무대장치도 남달랐다. 일곱 조각으로 이어 붙인 대형 하회탈의 아이디어도 빛났다. 한복을 입은 발레리나의 춤사위에선 씻김굿 가락이 묻어났다. 군무(群舞)의 도약은 휘몰아치는 사물놀이를 닮았다.

마스크는 애정 고독 절규 등 인간사(史)의 감정을 12개 옴니버스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 안무가 제임스 전 특유의 날랜 속도감에 이전 작품과 결을 달리 한 느린 잦아듦이 버무려진 ‘멜팅 포트(melting pot)’적인 춤. “멈춤의 서사가 지닌 아름다움에 최근 매료됐다”는 그의 심경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나 더, 한복이 뿜어내는 은은한 매력도 만끽할 수 있다.

김인희 SBT 단장은 “초연이라 아쉬운 점도 있지만 서울 무대에선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이번 순회공연이 내년 3월로 확정된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새너제이 공연의 힘찬 활시위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앙카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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