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중 하루쯤은 이 책을 들고 어딘가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다. 책 제목처럼 일요일의 마음으로, 차분하고 여유롭게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미당 서정주의 시 ‘일요일이 오거던’으로 대신 보여 준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
‘일요일이 오거던/친구여/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찾다 찾다 놓아둔/우리 아직 못 찾은/마지막 골목들을 찾아가볼까’
마지막 골목의 아련함, 참 아름다울 것 같지 않은가.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 교수인 저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26편의 에세이를 모았다. 정지용 황동규 씨의 시, 이문열 씨의 소설, 동서양의 그림, 그리고 영화와 음악 등 다양한 예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기도 하고 산과 나무, 암자와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을 차분한 사색의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특히 정갈한 문장, 침착하면서도 명징한 사유가 읽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한다.
‘고요’를 주제로 한 글을 읽다 보면 삶의 여백의 의미를 만나게 된다. 이상의 시 ‘거울’ 가운데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라는 대목, 추사 김정희 글 가운데 ‘반나절은 책을 읽고 반나절을 고요히 앉아 있는다’라는 대목,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에 나오는 아득한 심연…. 그 심연 뒤에 숨어 있는 역동적인 힘에 대한 사유도 빠뜨리지 않는다.
물에 관한 명상도 좋다. 지리산 달궁 계곡, 가을을 빛내 주는 선운사 앞 개울, 다른 물방울 만나 몸을 합쳐 함께 구르는 ‘토란잎’ 물방울 등 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철학적 사색을 보여 준다. 그러고 나서 저자가 이르는 곳은 머릿속의 물. 그건 다름 아닌 ‘인욕(忍辱), 바라밀의 화신’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성찰이다.
조선 후기 화가 이재관이 그린 ‘강약선 선생 초상’을 보고 ‘세상에 대한 언짢음을 지긋이 참으면서도, 어수선함 속에서 맑음을 찾고 어지러움 속에서 이치를 찾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건 다름 아닌 저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일 것이다.
26편 글들은 모두 편안하고 깨끗하다. 깊게 사유하되 글은 사변적이지 않다. 맨 첫 장에 나오는 한 구절이 특히 마음에 오래 머문다.
세파난고해 심운유미봉(世波亂苦海 心雲留美峰). ‘시름 많은 세상이여 마음은 아름다움에 머무네’라는 뜻.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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