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전기철/‘풍경의 무게’

  • 입력 2007년 9월 28일 03시 06분


《세상 속으로 걸어가면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동전들이

궁시렁거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발자국보다 먼저

소리치는 동전이 귀찮아

조심조심 걷는다.

두리번거리는 눈빛보다

철렁, 먼저 걷는 동전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미끈한 십원짜리를 만진다.

다보탑이 차갑다.

몇 번 쓰다듬은 후

걷는다. 소리치는 동전들

다보탑끼리 보듬으며

땀을 흘리는 십원짜리들

업고 업힌다.

시집 ‘아인슈타인의 달팽이’(문학동네) 중에서》

옛말에 ‘자식을 앞세우고 가면 배가 고파도 돈을 품에 지니고 가면 든든하다’ 했건만 어찌하여 저 돈은 성가신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저래도 국보 20호 다보탑까지 새겨진 빛나는 몸이 아니신가. 한때 저 동전 몇 개면 버스도 태워 주고, 과자도 먹여 주고, 공중전화기 저 너머 따뜻한 목소리도 들려주었으리라. 더는 ‘실용’이 되지 못하고 ‘무게’만 남은 누런 화폐가 하릴없이 호주머니 속에서 부대낀다. 쥐도 물어가지 않는 차가운 쇳덩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쉬 버릴 수 없는 것은 저 속에 뜨거운 인간의 체온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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