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면화) 하면 흔히 고려의 문익점(1329∼1398)을 떠올린다.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목화씨를 들여온 인물. 물론 붓두껍 속에 숨겨 들여왔는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이 있지만 목화 덕분에 솜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이 땅의 섬유 및 의복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보아도 인류에 대한 목화의 기여는 대단하다. 프랑스의 방직 기술자가 쓴 이 책을 읽으면 이 같은 얘기가 실감난다. 목화 재배의 역사, 면직물 제조 및 유통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본 책이다.
그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기에 앞서 저자의 목화 예찬을 들어보자.
“지난 수천 년간 면은 인류 의복의 3분의 2를 제공해 왔다.…비단이 사치와 관능의 상징이었다면 면은 흰빛 덕분에 순수의 상징이자 경제성의 상징이었다.…면은 실용적이고 가볍고 세탁에도 좋다.…”
비단이나 양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면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적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인더스 강 유역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0년경의 것이다. 이 유물이 말해주듯 고대부터 근세까지 목화 재배와 면직물 제조는 인도가 주도했다. 인도의 목화는 기원전 6, 7세기경부터 중국, 메소포타미아, 로마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저자는 그 경로를 ‘목화의 길’이라 부른다.
목화의 길은 위대했다. 특히 18세기 유럽 근대사를 바꾼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영국인들은 인도 면직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열광했다. 그렇다 보니 면직을 더 잘 가공하고 염색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냈다. 목화 솜뭉치를 고도로 압축해 방적기에 넣는 기술, 씨를 빼내는 기술, 다시 원래대로 보슬보슬하게 복원하는 기술, 먼지를 제거하는 기술 등. 이런 기술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면직물의 디자인이 유럽의 패션뿐만 아니라 예술까지 선도해 나갔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감춰진 얘기도 흥미롭다. 인도의 염색 비법을 훔쳐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18세기 프랑스 사람들 이야기, 중국의 마오 재킷(인민복)도 목화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목화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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