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단편 작가가 나타났다.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들고 온 천명관(43·사진) 씨. 그는 장편 ‘고래’(2004년)로 일찍이 독자와 만난 소설가다. 기이하고 개성적인 ‘고래’로 문단 안팎에 소란을 일으킨 그가 이상한 단편 작가라니?
분명히 그렇다. 첫 창작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 그는 ‘한국 단편’의 관습을 확실하게 배반하기 때문이다. 천 씨의 단편들은 그 관습에 익숙해진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신선하고 즐겁다.
‘보세요, 토마스. 당신에게 편지를 써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지금 막 여행에서 돌아와 식탁에 앉아 이 편지를 읽고 있을 거예요.’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첫 부분이다. 토마스는 이 편지를 쓰는 요한나의 남편이다. 요한나는 얼마 전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다가 남편의 불륜 상대는 요한나의 동생 나디아. 부정한 남편 때문에 죽고 싶은 요한나는 정말 죽기로 결심하고 남편에게 긴 편지를 쓴다. ‘토마스, 우리는 지금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의 동굴에 갇혀 있어요. 이 끔찍한 저주가 너무 두려워요’라며 한탄하는 요한나. 독이 든 동페리뇽을 마시고 자살할 거라는 예고를 했는데, 하녀 마리사의 실수로 샴페인이 바뀌고, 마지막에 죽는 사람은 요한나가 아니라 바람 난 토마스다.
이 소설에는 단편이라면 으레 갖출 것으로 여기는 ‘꼼꼼하고 미적인 문체’가 없다. 작가는 술술 쓴 문장 속에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사건들을, 이렇게 짧은 분량에, 편안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확실히, ‘한국 문단의 방외’(평론가 김영찬)의 것이다.
이 작가는 거대한 삶의 흐름 속에 있는 무력한 개인에 대해, 운명 앞에서 나약해지는 의지를 얘기한다. 그런데 그것을 들려주는 작가의 방식은 낯설기 이를 데 없다.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이나 모든 내용이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단편 특유의 글쓰기에 대해 작가는 등을 돌린다. 토머스 칼라일의 원고를 불쏘시개로 써 버리는 위즐리 부인 얘기(‘프랑스 혁명사’)를 비롯해 외국인명과 지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들이는 그의 소설은 그야말로 ‘무국적’이다. 작가의 단편이 전하는 것은 지극히 ‘소설적인’ 메시지이지만 그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 왔던 ‘소설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 놓는다. 이상한 작가 한 명이 나타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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