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문명을 믿을 수는 없다/그 문명 속에 허덕일 수도 없다/소슬한 솔바람 소리로/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리라/별들의 참한 이야기/잇따라 들려오고/꽃그늘에 오고가는/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우리 부신 꿈과 생시뿐이로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로 잘 알려진 신석정(1907∼1974)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보인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은 시인의 유고를 모은 것이어서 뜻 깊다. 세상을 떠나기 전 3년여 지상에 발표한 작품 90여 편이 묶였다. 시인이 작고 한 달 전에 꼼꼼하게 정리한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집이다.
“생사에 지나친 관심을 버린 지 이미 오래고 보니 남은 여로가 다만 담담하기를 원할 뿐이요… 오직 흐리지 않는 안청(眼晴)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고, 흐리지 않는 마음으로 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여생에 크게 괴롬이 없을 따름”이라고 소망했던 신석정 시인. 유고 시집은 그의 맑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들로 가득하다. ‘봄과 봄 아닌 것이/같이 살듯이/地獄(지옥)과 極樂(극락)이/겹치고 겹치듯이’(‘極樂과 地獄 사이’) 같은 시구에서, 친일시를 써 달라는 청탁서를 찢고, 1974년 긴급조치 전후 옥고를 치를 위기에 처하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면서도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낸 굳건함이 비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부드러운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편들이다. 읽다 보면 눈앞에 자연 풍경이 펼쳐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 ‘마음에 지니고’. ‘청산에/자고 이는 구름도/마음에 지니고//구름에/실려가는 학두루미도/마음에 지니고//학두루미/하늘에 부는 피리젓대/마음에 지니고//피리젓대/안고 쉬는 대숲에 바람도/마음에 지니고’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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