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국립현대미술관 동아일보사 MBC 공동주최) 폐막일인 30일, 서울 덕수궁미술관을 나서며 관객들은 이렇게 아쉬워했다.
16∼18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정수를 보여 주었던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이 3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이날 막을 내렸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7000여 점의 명화 가운데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티치아노 등 16∼18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거장들의 그림 64점을 선보인 자리였다. 6월 26일 개막된 이래 약 25만 명이 다녀갔다.
이번 전시는 대형 기획 전시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선 기존 대형 전시가 대부분 기획사들이 주관한 것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이 직접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는 점을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년 전부터 비엔나미술사박물관과의 협의를 통해 직접 주제를 정하고 64점의 작품을 선정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해외 미술 전시의 장르 폭을 넓혔다는 점도 또 다른 성과. 기존 대형 전시가 소장 기관(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미술관, 영국의 브리티시뮤지엄 등)이나 작가(인상파 화가, 샤갈, 피카소 등)의 유명도에 의존했다면 이번 전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체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유럽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국내 미술 애호가들이 ‘교과서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조의 유럽 미술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낯선 작품에도 관객들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즐기면서 작품을 감상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덕수궁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이를 “대중성과 작품성의 만남”으로 평가했다. 최 관장은 “전시를 진행하면서 관객들의 미술 수준과 욕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작품이 다소 낯설고 어렵다고 해도 좋은 기획이라면 관객들이 찾아온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고 설명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관람 문화가 한층 성숙해졌다고 분석했다. 가족이나 소모임 단위의 적극적 관객이 많았으며 전시작을 미리 공부하고 미술관을 찾은 관객, 전문가의 설명을 직접 듣고 자신의 느낌을 서로 토론해 보는 관객이 부쩍 늘었다.
작가나 작품의 유명도에 주눅들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취향에 맞게 즐기는 추세가 뚜렷해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나만의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즐기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저 멀리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도 내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이 가장 주목한 작품은 초상화였다. 젊은 여인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묘사한 ‘마리 드 부르고뉴’(니클라스 라이저·1500년경)와 나이 든 여성의 얼굴에 담긴 삶의 흔적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한 ‘늙은 여인’(발타자르 데너·18세기 초), 앙증맞은 표정과 의상의 독특한 표현이 돋보이는 ‘흰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벨라스케스·1656년경), 삶의 쓸쓸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과를 깎는 여인’(헤라르트 테르 보르흐·1660년경)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밖에도 16∼18세기 유럽의 일상 풍경과 정치 사회상을 보여 주는 풍경화, 생활풍속화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둘러싼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말과 여름 방학에는 특히 청소년 어린이 관객이 많았다. 덕수궁미술관 측은 유럽 역사와 전시작을 연계해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았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의 진지한 관람도 눈길을 끌었다. 어린이를 위한 전시 설명회는 연일 북적였고 전시를 관람한 어린이들은 작품 평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일부 어린이는 직접 만든 카드에 관람 소감을 적어 보내와 전시 관계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된 64점은 그대로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으로 옮겨져 선보여진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지만 이 전시에 매료된 대만 관계자의 부탁을 비엔나미술사박물관이 동의해 준 것이다. 우리 작품은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독자적인 콘셉트로 기획한 전시를 그대로 옮긴다는 점에서 한국 기획전이 수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만 전시는 10월 중순 시작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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