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독일 베토벤 페스티벌

  • 입력 2007년 10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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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고향, 독일 본으로 왔다.

세계적 명성의 베토벤 오케스트라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이 된다고 해서 기대를 잔뜩 품고 왔는데 본 기차역에 내려 주변의 즐비한 상점을 지나며 혼자 한참 웃었다.

미용실의 홍보 간판엔 특유의 산발한 헤어스타일을 한 채 베토벤이 인상 쓰며 머리 하러 오라고 권하고 있었고 귀금속 상점의 화려한 진열장에는 목만 내민 베토벤이 행복한 얼굴로 목걸이며 팔찌, 귀걸이에 다이아몬드 왕관까지 잔뜩 치장한 채 유혹했다.

선물가게에는 베토벤 두상 모양으로 생긴 투명한 상자 속에 달콤한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었다. 》

○상점들 베토벤 얼굴 내세워 관광객 유혹

본의 베토벤 페스티벌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세계의 축제를 다녀보면 요란 벅적지근하게 치르는 시끄러운 잔칫집 타입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조용하고 정중하되 격식 있게 치르는 수도원 타입이 있는 것 같다. 베토벤 페스티벌은 후자였다. 그래도 본의 도심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의상을 차려입은 20개의 베토벤 동상이 관광객을 맞으며 페스티벌 분위기를 돋우었다. 본에는 여행센터 외에도 ‘예술 공연 안내센터’가 따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클래식과 연극 공연이 가장 많았다. 문화정보잡지와 홍보책자가 어찌나 많은지 훑어만 보는 데도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자리에서 공연 티켓도 구입하고 공연 안내도 받을 수 있어 무척 편리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고향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음에도 영어 안내가 전혀 없는 점은 문제였다.

그래도 지갑에 쏙 들어가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진 연간 공연시간표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2008년 12월까지 공연의 비중과 일정, 개요가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크기도 신용카드 정도여서 지갑에 넣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국 공연축제들도 공연시간표를 만들 때 본받아도 될 것 같았다.

저렴한 관람료도 마음에 들었다. 중급 규모의 공연들은 정통 클래식이나 연극 등 장르에 구분 없이 15∼35유로(2만∼4만5000원)에 불과했다. 클래식 말만 들어가도 10만 원 단위가 거론되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됐다. 게다가 학생증만 제시하면 평소에도 8∼15유로(1만∼2만 원) 정도 돈으로 상당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영화표가 7.5유로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물론 이곳에도 가격이 높은 공연들이 있지만 100유로(약 13만 원)를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뿐만 아니다. 이곳에는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는 ‘구트샤인(Gutschein)’이라는 일종의 무료 아트쿠폰이 있는데 누구라도 소속 학교에 신청만 하면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완전 무료이며 외국 유학생들도 현지 거주자라는 것만 입증되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몇몇 도시에서는 아예 대학 신입생에게 첫 학기 동안 그 지역 공연장의 공연을 전부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 곳도 있다고 했다. 독일이 (유)학생의 천국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 것 같았다.

○공연 티켓으로 교통편 무료 이용… 우리도 활용해 볼만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동전을 세고 있는데 누군가 공연 티켓을 내밀고 쓰윽 올라탔다. 나도 혹시나 싶어 재빨리 공연 티켓을 내밀었더니 버스운전사가 얼른 올라타라고 손짓을 해 보였다. 공연 시간 전후 4시간 동안 본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 티켓에도 이런 안내가 쓰여 있지만 독일어로만 돼 있어 대부분 관광객들은 몰라서 이용 못 하는 듯했다. 연중 내내 이런 혜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베토벤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한 달간은 모두 공연 티켓을 교통 티켓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7년 전, 당시 난타 전용극장 마케팅을 담당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당시 공연 티켓을 ‘일일교통권’으로 활용토록 하려는 아이디어를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포기해야 했다. 관할 시구와 관계기관이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많은 절차를 다 밟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한국에서 내가 포기했던 똑같은 아이디어가 이곳 본에서 활용되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스치는 생각. 독일에 베토벤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윤이상 선생이 있지 않은가. 당장 통영국제음악제부터 기차표에서 통영시내 교통수단까지 두루 이용할 수 있는 윤이상 티켓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유경숙 공연기획자 pmiki@hotmail.com

▼베토벤 생가 음악회 풍경▼

명연주에 열광하는 ‘할아버지 부대’

베토벤의 생가에서 열리는 음악회 티켓을 샀다. 미국에서 날아온 보자르 트리오(Beaux Arts Trio)의 공연이었다. 베토벤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간다니 갑자기 귀인에게 초대라도 받은 듯 기분이 들떠 공연 시작 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갔다.

잔뜩 기대를 품고 찾아간 베토벤의 생가(Beethoven Haus)는 겉의 입구는 그냥 평범한 동네 이웃집 같았다. 들어가 보니 뒤쪽으로는 주차장도 있었고 반달모양의 실내 공연장은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객석 뒤편의 대형 통유리창도 인상적이었다. 고풍스러운 이웃집 건물의 정원이 관객 눈높이에 그대로 보일 만큼 공연장은 낮고 이웃집과 가까웠다.

이날 공연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협연으로 베토벤의 명곡들을 선사하는 정통 클래식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연주 내내 심지어 꼬고 앉은 다리 자세조차 바꾸지 않은 채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한 곡이 끝나 연주자가 마지막 호흡을 멈추고 악보를 교체할 때야 불편했던 자세를 고쳐 앉은 등 연주자를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만화 주인공 같은 할아버지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는 얼핏 보기에도 일흔은 넘어 보였는데(확인해 보니 실제로는 84세였다) 작고 쇠약해 보이는 체구에 어디서 그런 카리스마가 나오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 앙코르 연주가 끝나고 전원 기립박수를 칠 때 보니 베토벤 하우스는 은빛 물결로 출렁였다. 온통 백발의 노인 관객이었다. 노인 우대 할인이 있나 싶어 축제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4월부터 티켓을 판매했는데 좋은 공연을 알아보는 고령층이 먼저 움직인다고 했다. 가을 공연을 봄에 준비하는 노인들…. 멋진 연주를 보여 준 노(老)피아니스트. 객석이 나 같은 20, 30대 골드미스들에게만 점령당하고 꽃미남 피아니스트들이 ‘오빠부대’까지 몰고 다니는 젊은 우리 공연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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