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까마귀가 차도 한가운데서
풀썩, 풀썩 한다
차들의 속도 때문에 한 발짝씩 더 옮겨가는 듯 보이지만
이내 고요히 주저앉는다
납작해진다
가벼워진다
검은 비닐봉지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아무 생각 없이 누가 그걸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쓰레기통이 한 번 풀썩
애도한다
차들은 여전히 제 속도로 달리고
아파트 입구, 낯익은 노점상 할머니
검은 비닐봉지 불쑥 내민다
잘 다듬어 말린 거라고
국이나 끓여먹으라고
납작하다 가볍다
손을 넣으니 웬 우거지 같은
까마귀 날개.
- 시집 '뒷모습'(랜덤하우스) 중에서
풀썩, 풀썩, 뒹구는 저 까마귀들을 나도 본 적이 있다. 정처 없이 구르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싶다. 저 까마귀들이 하늘을 나는 건 드문 일이다.
대개 사람들의 손목에 죽지를 잡혀서 어디론가 바삐 흔들리며 가곤 한다. 저들의 얇고 질긴 위장과 엄청난 먹성은 잘 알려져 있다. 콩나물과 두부와 달걀과 사과와 소주병과 담배를 한 입에서 꺼낸 적도 있다.
그러나 저 까마귀들은 제가 먹은 걸 고스란히 인간들에게 토해 먹인다. 반포지효라 했던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비닐까마귀의 극진한 봉양을 받고 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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