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대못질’]제1부<17>언론정책 요직 진출한…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 등 언론주변단체나 ‘미디어오늘’ 같은 언론 주간지 출신이 대통령홍보수석실, 방송위원회, KBS 이사회, 신문발전위원회에서 요직을 맡으며 정부의 언론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들이 방송이나 언론 정책을 관장하는 곳으로 진출한 이유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언론 정책과의 ‘코드’가 일치한 덕분이다. 현 정부에서 제정된 신문법은 언론주변단체들이 수년 전부터 주장해 온 신문과 신문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조항을 법제화한 것이다. 방송·언론계 인사와 관련해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신(新)권언유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언련은 방송위원장을 비롯해 KBS 이사 등 7명을 배출해 현 정부 들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단체로 손꼽히고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방송인 및 언론인들이 정계나 행정기관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권언유착’이라고 비판해 오던 민언련이 정작 자기 단체 출신들에 대해서는 두둔 또는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언론단체 출신들의 급부상=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방송 정책행정기구인 방송위에는 민언련 출신이 대거 진출했다.

지난해 출범한 3기 방송위의 경우 민언련 고문을 지낸 이상희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위원장을, 민언련 상임대표인 최민희 씨가 부위원장을, 민언련 정책위원이던 주동황 광운대 교수가 상임위원을 맡았다. 9명의 위원 중 3분의 1이 민언련 출신이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주 위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사퇴했다.

2기 방송위에서는 민언련 이사였던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가 부위원장을, 민언련 이사장이던 성유보 씨가 상임위원을 맡았다. 방송위원장은 장관급이며 부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은 차관급이어서 민언련은 최근 10년 사이 장차관급(정무직)을 5명이나 배출한 셈이다.

방송위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KBS 이사 중 한 사람인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민언련 공동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신 교수는 이사 임명 직후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KBS 노조의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다.

신 교수와 함께 민언련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신문법상 기구인 신문발전위원회(신발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언개련의 경우 김영호 공동대표가 신발위 위원과 신문유통원 이사를 맡고 있으며 이춘발 KBS 이사는 정책위원을 지냈다. 언개련 사무총장을 지낸 김주언 씨는 신발위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중 ‘이승복 보도 진위’와 관련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실형을 받아 면직됐다.

이들 언론주변단체 출신 중 일부는 건강 문제나 부동산 투기 의혹, 논문 표절 논란 등 결격 사유로 인해 스스로 사퇴하거나 사퇴 압력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요직에 임명된 것은 코드 인사로 인해 검증이 제대로 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 대못질’의 선봉에 선 사람들=대통령홍보수석실과 국정홍보처는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입안해 실행에 옮기는 ‘언론 대못질’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곳에는 미디어오늘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1995년 언론노조의 언론노보에서 분리해 창간됐으며 1999년 독립법인으로 바뀌었다. 미디어오늘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신문을 공격하거나 민언련과 함께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을 지지하는 기사 및 칼럼을 게재해 왔다.

안영배(45) 국정홍보처 차장은 말지와 기자협회보 기자,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 홍보수석실의 행정관과 국내언론비서관을 거쳤다. 안 차장은 2004년 7월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패러디물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방치했다가 물의를 빚자 직위 해제됐다. 하지만 한 달 만에 국내언론비서관으로 복귀한 뒤 홍보처 차장으로 승진했다.

정구철(44) 대통령국내언론비서관도 언론노보, 미디어오늘, 기자협회를 거쳐 2004년 홍보수석실 행정관, 한국정책방송KTV 영상홍보원장(1급)을 지냈다.

양정철(43)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1988∼94년 언론노보의 기자를 지낸 뒤 나산그룹과 한보그룹 홍보실, 국내언론비서관 등을 거쳤다.

미디어오늘 초대 사장과 기자협회장을 지낸 남영진 씨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노무현 브리핑’을 작성했으며 이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를 거쳐 신발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미디어오늘 기자를 지낸 장현철 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사무관이 된 뒤 200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통령홍보수석실에서 근무했다. 장 단장은 취중 주먹다짐 사건으로 청와대를 떠났으나 게임업계 경력이 없는데도 게임등급위원회 총괄기획단장을 맡아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오래지 않아 물러났다.

미디어오늘 차장을 지냈던 이호석 씨는 지난해 5월 국내언론비서관실 행정관을 맡았고 민언련 간사, 미디어오늘 기자, 오마이뉴스 부장을 지낸 신미희 씨도 지난해 6월 국내언론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옮겼다.

이들은 언론 정책을 입안함과 동시에 청와대브리핑이나 국정브리핑에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수시로 올리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언론주변단체들은 방송과 언론을 감시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부 기구에 진출한 자기 단체 출신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언련은 지난해 신태섭 대표의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정치적 공세이자 표적 보도”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이 단체의 정책위원인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교수 사회의 표절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동아일보가 신 이사의 표절만 검증한 것은 그가 민언련 공동대표이기 때문”이라며 “표적 보도는 표절보다 나쁘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신 대표는 표절 여부 검증을 자신이 이사로 있던 언론정보학회에 의뢰하겠다고 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방송위나 민언련도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민언련은 또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이 2004년 6월 오마이뉴스와 미디어오늘에 ‘방송의 탄핵방송이 편파적’이라는 언론학회 보고서를 반박하는 기고문을 실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부위원장이 탄핵이 아니라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내놓은 것”이라고 편드는 성명을 냈다.

민언련 등은 언론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에 대해선 원칙이 없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상임대표였던 최민희 씨가 방송위원에 임명되자 “전문성이 있고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며 공개 지지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언론 공격, 기자 출신 실세가 주도

홍보수석-처장 등 핵심라인 모두 전직 언론인

대통령홍보수석실은 8월 30일 ‘청와대브리핑’에 신정아 씨 사건과 관련해 언론이 권력 실세의 비호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이름을 대라, 그 사람이 실세인지 아닌지 가려 주겠다”며 비판했다. 또 다른 청와대브리핑의 글에선 ‘(언론이) 보도를 흉기로 휘두른다.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는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언론을 맹공하는 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언론인 출신이다. 현 정부 언론정책의 핵심 브레인인 윤승용 홍보수석비서관은 한국일보,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중앙일보,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은 미디어오늘 출신이다.

윤 수석비서관은 5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일할 때 매일 아침 30여 명의 기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는 것이 짜증났다”며 “전자브리핑제가 도입되면 공무원도 편하고 기자도 편해질 것”이라고 말해 과연 기자 생활을 경험한 언론인 출신인지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김 처장은 8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기자들의 공무원 취재 보장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에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 더는 의견을 경청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당시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별위원회는 정부 측과 개선안을 협의 중이었으나 홍보처는 협의 중단 통보도 없이 자신들의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었다.

또 안 차장도 ‘기자 여러분 이제 솔직해집시다’라는 글을 통해 “기자들이 원하면 언제나 마음대로 부처 사무실을 무단출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논점이 분명해진다. (이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무단출입의 특권을 대놓고 주장하기에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기자들이 무단출입을 원하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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