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사무치는 ‘사랑의 교향악’
소월 시를 읽노라면 ‘당신’이라는 말은 어찌 그리도 순하고 그윽한지, 천 년쯤은 족히 묵은 당신의 꼬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당신’도 그쯤 되는 당신이니,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 중에서)라고 영혼을 다해 부르는 것이리라. 그쯤은 되는 사랑, 그쯤은 되는 시를 꿈꾸게 하는 시인이 내게는 늘 소월이다.
그러니까 소월의 ‘진달래꽃’을 읽노라면, 태생적으로 모든 서정시는 사랑시임을 새삼 깨닫곤 한다. 그리고 목숨이고 설움이고 눈물겨운 사랑도, 시도 정작 ‘추거운(축축한) 베갯가의 꿈’(‘님에게’)이거나 ‘흩어지는 물꽃뿐 아득한’(‘산 위에’)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 사랑은 우리 삶을 지탱하고 관통하는 심지다.
소월처럼 우리말의 결과 곡을 맛깔스럽게 구사한 시인도 드물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입말(口語)을 오묘하게 자르고 엮어 그 여백에 정서의 계곡이라든가 의미의 허방을 만들어 놓곤 한다. 소월의 시가 노래인 이유이다. 그러니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개여울’)처럼, 꼭 ‘홀로이’여야 하고 ‘주저앉아’야만 하고 또 그 풀포기는 ‘파릇’해야만 하고 물은 ‘잔물’인 채 ‘해적’여야만 한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고 약속하며 떠난 사람도,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 그 약속을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으로 새겨듣곤 하는 사람도 간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월 시에서 사랑은 이별이고, 약속은 부탁인 이유이다. 여자인가 싶으면 남자이고, 여기인가 싶으면 저기이고, 가는가 싶으면 오고, 오가는가 싶으면 길 복판에 갇혀 있고, 사람인가 싶으면 귀신이고, 소박하다 싶으면 애매하다. 그의 언어는 그렇게 불쑥불쑥 육(肉)과 혼(魂)의 경계를 넘나들곤 한다. 그의 언어가 사무치는 마음 어디쯤에 애틋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가을 못물가를 싸고 떠돌다 그 못물로 노을이 질 때 이렇게 노래해 본다면?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가을 저녁에’).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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