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는 남에서 본다면 가장 북쪽이지만 북에서 본다면 가장 남쪽인 지점이다. 그렇다면 남북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예전에는 대립의 종점이었지만 지금은 화해의 시발점이다. 버스를 타고 함께 간 원불교 교역자들의 정복인 흰 저고리 까만 치마 역시 남북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평범한 아낙네들의 일상복이었다. 승복 역시 조선시대에는 모든 이의 평상복이었다. 옷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시절이 바뀌니 옷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사바세계에 남북이 없을 수는 없다. 당나라 때 중국 선종계 역시 남북이 있었다. 양자강 북쪽지방에는 신수(神秀) 선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장강 이남에는 혜능(慧能) 선사의 교화력이 빛났다.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수남능(北秀南能)’이라고 칭했다. 남쪽의 귤은 북쪽으로 올라가면 탱자가 된다. 과일도 지방에 따라서 그 색깔이 다르듯 수행 방법 역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남쪽 사람은 지름길로 가는 것을 좋아했고(南頓) 북쪽 사람들은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올라가는 걸 선호했다(北漸). 성질 급한 사람은 남쪽 길로 갔을 것이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이는 북쪽 길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딜 가건 모두가 수행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고자 하는 바람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혜능 선사는 더벅머리 행자 시절 ‘사람은 남북이 있지만 불성(佛性)은 남북이 없다’는 명언을 남겨 주변사람을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만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북은 남북이 아닌 것이다. 남쪽 강변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북쪽 평야에선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서로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운문(雲門) 선사는 ‘남산에서 북을 치면 북산에서 화답하여 춤을 춘다(南山打鼓 北山舞)’라고 노래했다. 남북이 ‘따로따로’라고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따로 그리고 함께’라고 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
원철 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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